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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pr 11. 2020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일본 근현대사 이해의 출발

이 책(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을 접한 것은 꽤 오래전 (대략 2015년이나 2016년) 교보문고에서 박훈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어서였죠. 그때 책을 사놓고는 언제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묵혀 두고 있었는데, 최근에서 동아시아의 근대사에 대해 조금 공부를 하면서 탄력을 받아 미루고 미뤄왔던 이 책까지 드디어 완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의 추진 배경에는 유학(儒學)이 있다.


이 처럼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조선에서조차 사대부적 정치 문화가 위축되어 가던 19세기에 뜻밖에 '무인의 나라' 도쿠가와 시대 일본에서 사대부적 정치 문화가 출현했던 것이며, 이것이 전에 없던 정치적 활력을 가져와 막번 체제, 즉 도쿠가와 사화의 동요와 새로운 정치 질서의 형성을 이끌었던 것이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


저자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리고 최근의 역사학계에서 바라보고 있는 관점이 그렇듯이) 왜 우리는 근대화를 빨리 못했나? 의 관점이 아니라, 왜 일본은 달랐을까? 에 관점에서 접근한 책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그 핵심 원인 중 하나를 일본 사회 내 '유학(儒學)'의 확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일본이 사무라이의 나라라는 이미지만을 갖고 있지만, 근데 에도 막부 시대의 일본은 꽤나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더군요.


돌아가서... 메이지 유신이 가능하게 된 요인을, 하급 사무라이 계층의 정치 참여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권력체계로의 개편이라고 본다면, 이는 유학의 영향이라고 본 것입니다.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보이듯이, 유학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것이고, 왕에 대한 충성을 바탕으로 하죠. 200년이 넘는 평화 기간 중에 한량이나 다름 없어진 하급 사무라이 계층들은 칼 대신 유학을 통해 사화(士化)된 거죠.  




'아편전쟁'에서 비롯된 과장된 위기의식


당시 서양의 위협을 받은 것은, 조선은 물론이고, 청이나 일본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조선이나 청에 비해 위기의식을 크게 느낀 점이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진 큰 동기로 됩니다. 아편전쟁의 패배를 겪은 조선이나, 두 차례의 양요를 겪은 조선에 비해 일본은 변변한 전쟁 한번 안 해보고 개항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청과 전쟁을 벌인 영국이 다음에는 일본을 침략할 거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전쟁 당사자인 청이나 조선이 아편전쟁으로 그다지 큰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던 데 비해 일본 전역은 아편전쟁에 대한 갖가지 뉴스와 소문으로 끓어올랐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 박훈
일본인이 그린 페리 제독의 초상.


일본은 이미 '흑선'사건이 있기 이전에 '아편전쟁의 충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사무라이 정권입니다. 즉 군인들이죠. 막부의 수장인 '쇼군'의 정식 명칭이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입니다. 즉 오랑캐를 퇴치하는 것이 주 역할인 거죠. 만약 서양 오랑캐에 패배한다면 정권의 존립 기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청이나 조선과 달리 일본은 서양과 변변한 전쟁한 번 안 해보고 굴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의 위기의식은 단지 '개항'이나 '유신'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사무라이의 사화(士化)'에서 비롯된 여러 사상가들은 나름 세계정세를 보고 자신만의 정치적 견해를 만들어 나갑니다.


홋타는 당시의 세계정세를 이렇게 보고 있었다. 지금 세계 형세는 중국 고대의 춘추전국시대 나 일본의 전국시대와 같고, 각국이 서로 지배자가 되려 한다. 따라서 전 세계를 통일하는 세력이 나오지 않고서는 동맹과 전쟁은 반복될 것이며, 홀로 고립하여 태평을 누릴 수 있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 박훈


여기서 더 나아가 홋타는 일본이 세계만방의 대맹주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먹히게 된다는 생각이겠죠. 이후의 역사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100년이 넘는 질서(?) 있는 개혁


일본인들이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일 텐데, 2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미 군정을 제외하고 일본은 외세에 의한 것이 아닌, 내부에 의해 지속적인 변화를 해왔습니다. - 한때 유행했던 일본식 경영 용어인 '카이젠 (改善)'과 맥을 같이 하는 듯 -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면 이것이 오히려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정치면에서는 숱한 문제 속에서도 자민당 1당 독재가 계속되고 있고, 경제 면에서도 기존의 제조업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듯하죠. 물론 일본은 쌓아 놓은 돈이 많아 딱히 걱정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계속 선형적인 발전으로 갈 것인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지는 한번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 커버 이미지는 에도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납하는, 이른바 대정봉환을 선언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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