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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pr 13. 2020

약속, 그리고 침묵.. <화염>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눕니다]

'화염'은 연극의 대본입니다.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그을린 사랑'을 먼저 봤기에 상대적으로 좀 쉽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만약 사전 지식이 없이 바로 봤더라면 좀 따라가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대개 원작이 있는 경우, 원작을 보고 영화를 보라고 말하지만 이 책은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는 게 낫다 싶네요) 책 자체가 희곡이다 보니 실제로 연극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책에서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나왈'의 나이 설정인데 연극에서 이를 어찌 표현했을까 궁금하네요.





영원히 사랑한다는 '약속'


'나왈'은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스스로 '침묵'이라는 벌을 내립니다. 읽고 쓰기를 배워 할머니의 묘비에 이름을 새겨주지만, 자신의 무덤에는 묘비도 세우지 말라 합니다. 할머니의 유언대로 여인들 사이에 물려 내려오는 '비극'을 끝내야 했지만, 결국 그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맙니다. 아마도 나달의 침묵은 단순한 충격의 실어보다는 ‘그’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 아닐까 싶군요. (스포가 될 듯해서 더 자세히 적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볼 때나, 이 책을 읽을 때나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왜 나달은 굳이 잔느와 시몽에게 아버지와 형을 찾으라 했을까요? 아버지와 형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편지를 전했을까요? 그래도 최후에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는 메시지였을까요? 그냥 끝까지 혼자 안고 갔다면 - 물론 아들 ‘시몽’은 끝까지 엄마를 원망하며 살았겠지만 - 각자 그럭저럭 자기 인생에 만족하며 살지 않았을까요? 대본 마지막에서 서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듯한 (적어도 잔느와 시몽 남매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나왈의 의도는 결국 뚜렷하게 읽히지 않습니다.




영화 '그을린 사랑' vs. 연극 '화염'


이작품은 영화와 연극에서 몇 가지 차이점을 보입니다. 최근의 연극 공연은 영화의 영향을 받아 좀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하에는 연극을 '원작'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수학자인 잔느의 직업적인 면을 발휘해서 '그래프이론'이나 '콜라츠 추측' 등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간단한 '산수' 수준에서 1+1의 의미 정도만 언급됩니다.

아부 타렉을 찾는 증거가 영화상에는 발 뒤의 점이지만, 원작에서는 피에로의 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피에로의 코가 좀 더 상징성이 강한 듯싶습니다. 와합과의 애틋한 추억도 있고 말이죠.

원작에서는 꽤 비중이 있는 사우다가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달이 '노래하는 여인'이 되는데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지만 아마도 나달과 잔느 위주로 끌어가는 영화 구성상 삭제가 된 듯하군요.

영화에서는 나달의 종교가 상대적으로 명확하게 등장하지만 원작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버스 테러' 장면의 극적인 연출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현실감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죠




레바논, 그리고 중동의 역사


화염에서 배경이 되는 국가 역시 명확하게 표현은 안 하고 있습니다만, 원작자의 출생이나 각종 사건들을 볼 때 레바논이 유력하죠. 레바논이나 중동은 종교 문제로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직접적인 원인으로 들어가 보면 영토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을 듯합니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는 프랑스와 영국 외교관들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 경제를 무시하고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경계선의 산물이다. 1918년 이 외교관들은 지금부터 쿠르드인, 바그다드인, 바스라인은 이라크인이 된다고 결정했다. 누가 시리아인이 되고 누가 레바논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한 것은 프랑스인들이었다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레바논 바로 아래에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시리아가 있죠. 영국의 이스라엘 독립 약속 덕분에 PLO는 쫓겨와서 베이루트를 주 근거지로 삼아 활동 중입니다. 또 레바논과 시리아를 함께 식민지배하던 프랑스는 기독교인들이 많은 소레바논 지역에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외곽지역 (시리아 영토)를 포함해 국경을 새로 정함으로써 종교 분쟁의 씨앗을 만듭니다.


위 이미지 (외교부 여행경보 지역 표시)에서 보이듯 여행금지와 철수 권고에 해당하는 흑색/적색경보는 레바논 외곽과 베이루트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종교의 문제가 바탕에 있겠지만,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이해관계와 해결되지 못한 제국주의의 잔재가 또 다른 원인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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