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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Sep 27. 2021

마츠시마 나나코, My Favorite Things..

그리고, 다케우치 유코를 추억하며..

예전 네이버 블로그에 '프로필' 메뉴가 있었다. 브런치에도 '작가 소개'라는 것이 있지만, 당시 네이버 블로그는 싸이월드 영향인지 프로필이 댓글로 안부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아무래도 커뮤니티인 '카페'와 연동되다 보니, 카페에서 새로 알게 된 이들과 접점 역할을 한 것이 프로필이 된 듯하다. (대인 관계에 중요하단 얘기다) 


당시 내가 프로필에 올려두었던 글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대략'이라 쓴 이유는 지금 다시 보니 너무나 민망하여 조금 손을 봤기 때문.. (그런다고 해결될 수준은 아니지만..)


마츠시마 나나코, 매트릭스, 허진호 감독의 영화, Coffee Bean의 갓 볶은 모카 향기,
웨스트윙, 카레 카노(彼氏彼女の事情)를 포함한 재패니들, 제주도 밤바다,
가끔 있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아니 그 분위기, 할 일 없는 일요일 오전,

(중략)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여행 스케치의 별이 진다네,
바스끼야의 낙서, 샤갈의 그림, 오드리 헵번의 영화들. 짐노페디, 쇼팽의 Etude.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人 이야기, 진중권의 칼럼들, 히스토리와 디스커버리,
'
'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할 때 보단..
좋은 카페를 발견할 때가 더 기쁜..

난, 우린 그런 Well-Made 中毒에 빠져 들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규정짓는다..

내가 좋아하는 이 수많은 무엇 보다..
나를 좋아하는 확실한 하나를 찾고 싶다.


새벽에 쓴 연애편지 마냥 한없이 유치한 감성이지만.. 당시 내가 좋아했던, 혹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들이고, 또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나 보다. 아무래도 취향이 같은 사람과의 대화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


때 지난 감성을 뒤늦게 들추려는 것도 아니고, 별 볼일 없는 글을 여기서 자랑하려 건 더더욱 아니다. 무수히 적어 놓은 이런저런 좋아하는 것들.. 그중 맨 처음 적어 놓은 이름이 바로 '마츠시마 나나코'다. (커버 사진 속 저 여자분)


왜 하필 '마츠시마 나나코'일까? 지금은 그 이유도, 또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처음 봤는지도 기억이 흐릿한데, 아마도 당시 나에겐 윤동주의 '패. 경, 옥' 같은 이국 소녀가, 그리고 ‘샴푸의 요정’이 ‘마츠시마 나나코'였나 보다. 그저 아스라이 멀리 있는 그 누군가를 그리워했는지도.. (당시 일본 문화란 것은 특정인들만의 소수 취향이었다) 


그 '마츠시마 나나코'를 얼마 전 우연히 보았다. 물론 직접은 아니고... 일본에선 어땠나 몰라도, 근래 영화나 드라마에선 보기 힘들어 은퇴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도의 막이 내릴 때'라는 영화에서 갑작스레 마주한 것이다.


20년 가까운 간극은 꽤 컸다. 아..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너는 안 늙었는 줄 아느냐고?) 다시 마주치면 절대 안 된다는 첫사랑 같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원미경, 차화연 씨가 복귀했을 때 이제 아재가 된 소년 팬 분들도 몰래 그런 감정을 삭였을까?


이제 난 멋있는 카페보다 맛있는 노포를 더 좋아하고, 한 잔에 5천 원 넘겨받는 커피빈 보다 천오백 원짜리 동네 카페를 더 자주 가고, 진중권의 칼럼을, 아니 아니.. 진중권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공유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건 여전하다.




작년 이 맘 때엔 '다케우치 유코'의 사망 소식이 들렸다. 많은 이들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만갑 아니다)로 기억하겠지만 나에겐 '런치의 여왕'이 먼저다. 마냥 발랄한 청춘일 것 같던, 오므라이스 하나에 행복할 것 같던 그 런치의 여왕에게도 삶의 무게는 가볍진 않았나 보다.


최근 1-2년 간 갑작스레 주변 분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다. 저 젊은 날의 기억들도 그냥 추억으로 계속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마냥 기다려 주진 않는다, 억지로 붙들고 살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빨리 흐르진 않았으면 좋겠다.


P.S. 그때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며, 그리고 커버에 넣은 사진을 다시 보고 문득 깨달았다. 그때 내가 왜 마츠시마 나나코를 좋아했는지.. 하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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