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블' 사랑은 참 유별나다. 그중에서도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국내 개봉한 모든 외화 중 1위에, 전체 흥행 순위로도 5위에 오른 초대박 작품이다.
마블은 '어벤저스 엔드게임' 이후 <페이즈 3>에서 이제 <페이즈 4> 세계관으로 넘어왔는데, 영화로 따지면 3편(블랙위도우, 샹치, 이터널스),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7편(영화 3편+완다 비전, 팔콘과 윈터 솔저, 로키, 호크아이)이 공개됐지만 도통 어디로 가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중에 '이터널스'를 보고 특히 우려가 되는, 그들이 추구하는 '다양성'에 대해 어깃장 한번 놔볼까 한다. 마블의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 사랑하니까 때리는..)
때론 지나친 친절이 불편할 때가 있다. 마블의 최근 영화들이 그렇다. 아니 마블뿐 아니라 근래 할리우드 분위기가 다양성 배틀이라도 붙은 것마냥 흑인, 여성, 장애인.. 그리고 또 무슨 소수자들을 위한 (또는 등장시키는) 영화들을 찍어 낸다.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일베 같은 거 아닙니다.)
마블은 '블랙 팬서'의 성공 이후, '캡틴 마블'이나, '블랙 위도우' 등 기존 (히어로물에서) 조연 역할을 하던 소수자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데, <페이즈 4>부턴 아예 그쪽 길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중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중국풍 영화(샹치, 중국 개봉도 못했다)는 그렇다 치고, 가장 심각한 것은 이터널스인데..
이터널스는 동성애자, 청각장애인, 유색인 등등 온갖 소수자들을 등장시키며 기존 히어로(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전형을 깨버리는 것까진 좋지만.. 뭐든 과유불급이지 않나? 히어로로서의 능력(망토만 입었으면 DC로 헷갈릴 법한..)은 모르겠고, 그들의 핸디캡(?)만 강한 잔상으로 남는다.
이런 포용성의 오지랖은 원폭 장면에서 폭주한다. 아마도 미국 입장에선 일본을 단순한 패전국으로 바라보기 때문이겠지만.. 자신들의 시각만 담아놓고 다양성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다. 히든 피겨스의 한 장면에 대입해 보자면, '백인' 상사인 비비안(커스틴 던스트)이 마치 '나는 관대하다'는 걸 알아 달라는 듯 말한다. '당신에게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거기에 흑인 직원은 이렇게 답한다.
'알아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불편한 그들의 배려는.. 내가 아시아인이라고,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며 친절하게 웃어주는 식당 직원을 마주한 씁쓸함을 남긴다. (팁 구다사이~!)
그럼 왜?! 할리우드는, 특히 마블은 이렇게 다양성에 집착할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건 미국 내에서의 정체성의 싸움이자, 정치적 메시지다. 트럼프로 인해 불거진 극우의 급부상은, 진보 지식인들에게 그간 너무 안주했음을 깨우쳐주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방식으로...
트럼프 집권 후 그 보수적이라는, 백인들의 잔치라고 놀림 받던 아카데미조차 '클로이 자오'와 '봉준호'와 '윤여정'에게 오스카를 안겨주었고.. 기생충이 연달에 수상을 하던 순간 기립 박수를 치던 할리우드의 감독과 배우들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미국이다', '이것이 할리우드다'.. (헐리우드는 트럼프를 계기로 '진보'로 결집한 것 같다. 폭스, 아니 머독도 영화판을 떠나는 걸 보면..)
이유야 어찌 됐든 자꾸 뭔가 시도를 하니 실수도 잦아 보이는 거겠지, 좋게 해석하고 싶다. 이젠 그래도 자막 없이 볼 수 없는 한국말을 하는 한국(인 같은) 배우의 연기를 참고 봐야 하거나, 엉뚱한 한글이 갑자기 등장하는 장면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단계는 지난 듯하니까..
다만 제임즈 본드에게 '도자게'를 시키는 것 같은 '퐝당'한 장면들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도 좀 신경 써주셨으면 좋으련만...
원래 이 글은 마블 <페이즈 4>의 주요 특징이라 생각되는 '다양성'과 함께 '멀티버스'에 대해 쓰려고 했던 글인데.. 어쩌다 미국의 정치 상황까지 넘어가다 보니 멀티버스 얘기를 같이 넣기는 어색해져 버렸다. 이 얘기는 본격적으로 멀티버스 세계관이 펼쳐진다는 '스파이더맨' 개봉 이후로 미루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