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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Dec 24. 2021

존재 없음의 시대.

데일리 인사이트 # 3.

요즘엔 Zoom으로 회의하고, 학교 수업도 온라인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한편으론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서 걱정이지만, 쓸데없이 낭비되는 시간(회식이나 출퇴근 시간 같은)이 줄어드는 건 나름 장점이죠. 오히려 코로나 이후 다시 출근하는 게 걱정인 분들도 꽤 되지 않을까요?


코로나가 이러한 비대면 사회를 훨씬 앞당겼다고, 그래서 코로나가 끝나도 이런 추세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데.. 그럼 이런 의문이 듭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비대면 세상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는 괜찮은 걸까?




디지털 인지도의 쏠림현상.


80년대만 해도 한 학급에 5~6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30명가량이죠. 


만약 나의 인간관계를 학교로만 좁혀 계산해 본다면, 요즘 학생들의 '직접적인' 인간관계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입니다. 만약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이 강화된다면 이보다 더 줄어들지도 모르죠. (아니, 요즘 애들이 학원을 몇 개 가는데.. 하실지 모르지만 인간관계는 학원보다 오히려 작은 일탈들에서 쌓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들 학원 갈 때 못 가는 아이들은 더욱 고립되죠)


온라인 강의가 더욱 보편화되고, 수업도 내가 다니는 학교 외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누구나 국내에서 가장 잘 가르친다는 일타 강사에게 수업을 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만약 학교가 지식의 전달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디지털 시대엔 그 많은 선생님이 존재할 이유가 없죠. (선거를 위한 정치적 고려가 없다면...)


학생, 또는 회사원은 사정이 나을까요? 학급이나 팀에 소속되어 있다면 좋든 싫든 서로 부대끼며 지내겠지만, 비대면 상태에서 프로젝트 단위로만 움직이게 되면 뛰어나게 일(공부)을 잘하거나, 친화력이 좋은 경우가 아니면 존재감이 묻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 3위 광고 미디어그룹인 Publicis는 전 세계의 수만 명의 직원 중 각 프로젝트 별로 가장 적합한 인재를 찾아낼 수 있는 AI 개발을 추진한 적이 있다. (링크 : Publicis Marcel Demo) 카페식 사무실에서 편하게 이동하며 근무하던 시기를 넘어, 이젠 비대면으로 각자 집에서 근무하고, 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상황이 될 때..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 자리가 주어질까?


디지털 시대에 내가 알고,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나를 알고 나를 찾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듭니다. 대면 사회가 같은 공간 안에서 다대다(多對多) 형태로 어울리던 시대라면, 비대면 시대는 비범한(그게 능력이든, 외모든..) 이들에게 시간, 공간 제약 없이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레 관심의 사각지대를 만들죠. 


이를 네트워크 과학에선 '멱함수'로 설명한다. 연결되는 지점(노드)이 많아져도 특정 노드에 점점 트래픽이 집중되는 현상이죠. 아래 그림에서 왼쪽이 오프라인 세계(고속도로)라면 오른쪽은 온라인의 세계(항공 네트워크)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전 세계에 공항이 많아질수록 인천, 창이 같은 몇몇 허브 공항으로 트래픽은 집중되죠. 


고속도로와 달라 항공노선은 노드가 많아질수록 일부 '허브'에 집중된다 (출처 : 링크)


과연 나는, 우리 브랜드는 관심을 받는 쪽에 있을까요?


Anonymous, 아무도 아닌,,,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본 분이라면, 조회수를 높이고 공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실 겁니다. (안타깝지만 저도 그 심정 잘 알죠.)


앞서 학교를 예로 들었지만, 누구나 은퇴를 하고 사회와의 관계가 끊어진 후, 즉 그나마 유지되던 강제적 대면, 또는 비대면이 사라진 후엔 우린 처음 겪어보는 완전한 비대면의 사회에서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때 우린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요?


영국에서는 이 문제가 너무나 중요해져서 2018년에는 마침내 총리가 외로움부 장관 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인 여덟 명 중 한 명은 의지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답했는데, 이는 겨우 5년 전의 열 명 중 한 명보다 높아진 수치다. 영국 시민 4분의 3이 이웃의 이름을 몰랐고, 영국 직장인의 60%가 직장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아시아, 호주,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상황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이 글은 고령화 사회에서 사회 적응을 못하는 노인, 또는 내가 은퇴한 뒤가 걱정돼서 쓰는 글이 아닙니다. (부제가 '데일리 인사이트'죠.)


모두가 메타버스를 얘기하는, 또 로봇이,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시대, 그런 시대의 사회는 어떻게 변해갈까 생각해 봤으면 싶어 쓴 글입니다.


디지털 쏠림에 어떻게 대비할까? 아무도 아닌 존재로 남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사회에서의 새로운 기회는 또 무엇이 있을까? 좋든 싫든 미래는 빠르게 왔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더 빨라질지도 모르죠. 


대공황은 겪었던 사람은 평생 검소하게 살았고, 일본은 버블 붕괴를 겪은 후 30년째 디플레이션 사회입니다. 큰 충격은 꽤 긴 여파를 남긴다. 코로나 역시 끝나면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어떤 긴 여윤이 남길 지 모릅니다. 


새롭게 뭘 배우든 마음의 준비를 하든, 충격에 대비할 때인 건 분명한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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