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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pr 18. 2020

홍콩 시간은 거꾸로 간다 <13.67>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눕니다]

새로운 분야를 시작할 땐 어떤 기대감, 그리고 그것이 충족될 때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물론 잘 모르는 분야를 시작할 때의 설렘과 괜한 시간 낭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죠. 거창한 얘기 같지만 저의 '미스테리 소설' 도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읽은 책들은 모두 Notion이라는 툴에 항상 기록을 해놓는지라, 작년(2019)에 읽은 책들 중 소설이 몇 권이나 되나 살펴보니 총 2권 뿐이더군요. 그나마 종교 관련 서적들을 읽다가 오래전 읽었던 '사람의 아들'을 다시 꺼내 본 걸 포함해서입니다. (고등학교 때인가 읽고 너무 충격을 받았던..) 나머지 한 권은 '직지'구요.




미스테리의 세계에 빠지다, 다시..


셜록 홈즈를 제외하면 미스테리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한때 '김전일'을 몽땅 다운받아 놓고 (그땐 불법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던 때라) 퇴근하고 돌아오면 매일 한편씩 보던 게 낙이었던 때도 있었고, 더 오래전엔 '제시카의 추리극장'이나 '블루문 특급' '레밍턴 스틸' 등을 재밌게 봤던 걸 생각하면 원래 추리극은 꽤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작년에 유럽 여행을 갔더니 TV에서 제시카의 추리극장을 하길래 참 반가웠습니다.. 이게 언제 적...)



하지만, 미스테리는커녕 최근 몇 년간 소설도 한 권 읽어본 적이 없다가 갑자기 삘을 받은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요. 우선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는 거고. (참고로, 이 영화에서도 제시카의 추리극장을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잡지를 좋아하다 보니 안 읽어도 이것저것 사모으는 편인데 (과학잡지부터, 역사비평, 인문학, 종교지까지..) 그중 <미스테리아>라는 잡지에 꽂혔다는 겁니다.



미스테리의 세계에 입문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막막하던 차에 마침 이 잡지에서 소개한 소설들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름도 생소한 '찬호께이'라는 작가의 <13.67>이죠.


재밌는 건 <13.67>을 소개했던 기사는 대만의 추리소설에 대해 소개한 내용인데, 찬호께이는 '홍콩 사람'입니다. 중국은 미스테리물도 출판이 자유롭지 않은 데다 쓰는 문자도 달라 (중국은 간체, 대만과 홍콩은 번체) 대만에서 데뷔를 한 뒤 중국에서 수입을 하게 되는 일이 많다고 하는군요.. 홍콩이 아시아 문화의 중심이던 때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죠.




두 명의 경찰, 그리고 홍콩의 역사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은 두 명의 경찰입니다. 그렇다고 <투캅스>나 <나쁜 녀석들> 같은 버디물의 성격은 아니고, 스승(사부)인 '관전둬'에서 '뤄샤오밍'으로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중 1장에 나오는 '관전둬'의 소개는 이 소설의 전체적인 배경을 요약하고 있죠.


관전둬는 1960년대의 좌파 폭동을 겪었고, 1970년대의 경찰과 염정공서의 분쟁을 버텨냈으며, 1980년대의 강력범죄에 대항했고, 1990년대의 홍콩 주권 반환을 목도했으며, 2000년대의 사회변화를 증언하고 있다.

<13.16> 1장. 흑과 백 사이의 진실 - 16p.  


다른 나라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배경이 이해가 안 가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 소설은 책을 읽으며 오히려 홍콩의 역사와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구체적인 지명과 상황에 대한 묘사를 보면 마치 저도 홍콩 어느 거리에 함께 있는 듯하죠.


제목인 <13.67>은 '2013년-1967년'을 의미하며, 거꾸로 쓴 이유는 6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이 시간의 역순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구성은 '박하사탕'과 비슷하고, 역사적 사건과의 연계는 '포레스트 검프'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2013년은 책의 출간 시점인데, 마침 우산 혁명 (2014)이 일어나기 직전이죠.  


현재의 상황은 작년의 홍콩 시위까지 저희가 지켜본 대로입니다. 코로나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들은 지금도 꾸준히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하더군요.

  


 

반전의 묘미


미스테리는 반전이 핵심이죠.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라고 외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실 분은 역사적 배경 외에는 가급적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떤 반전일까?를 궁금해하면서 맞춰보는 재미도 있지만, 평을 읽다 보면 대략 어떤 장치를 쓰는지 감이 잡히기에, 막상 반전을 접했을 때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다만, 이 작품은 관전둬를 중심으로 한 6개의 에피소드가 각각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데, 왜 굳이 시간을 뒤집어 놨을까? 하는 것에 대한 것도 큰 재미이니 꼭 끝까지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600페이지가 넘습니다. 독서모임에서 '망내인'이라는 찬호께이의 책을 함께 읽기로 했는데 이 책도 거의 700페이지짜리)


반전 얘기하니 생각나는 것이, (꽤 오래전) 친구가 전화를 해서 제 글이 신문에 실렸다며 호들갑을 떨어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요. 한때 여기저기 열심히 영화평을 올리던 때가 있었는데,  모 신문사가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제가 인터넷에 올렸던 평을 기사에 인용했더군요. (요즘이나 그때나. ㅉㅉ)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겠지만 제가 마치 이 영화 안티의 대표가 된 것 같은 착각에 혼자 미안해진 적이 있습니다. 


생각난 김에 찾아보니 아직 기사가 남아 있길래 링크 걸어 봅니다. 이때 나름 충무로 키드라며, <씨네 21>을 한쪽 팔에 끼고 혼자서도 열심히 영화 보러 다니던 추억들이 떠오르네요..


[동아일보] 씨네마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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