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스토리를 담아라.
지난 글에서 스토리텔링을 위해 먼저 '캐릭터, 즉 화자(Speaker)를 명확히 할 것'과 '고객의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아래 글까지 총 4개의 법칙에 전체적으로 관통되는 내용은 결국 소비자의, 소비자에 의한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사실 그게 전부죠.
누군가는, 최근엔 오너 스토리가 더 중요해지지 않았느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너의 이야기 역시 공감을 일으키는 건 대체로 소비자 감성과 통하는 부분이거든요. 창고에서 힘들게 창업한 스토리나, 어느 날 요리를 하거나 장을 보다가 우연히 영감을 얻었다거나, 해외여행을 갔다가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도 꼭 소개하고 싶었다거나...
실상 그 아이디어는 말단 직원이나 대행사의 제안이었을 수 있고, 회장님은 그냥 임원들의 보고를 받고 결정만 했을 수도 아예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재미가 없죠. 직장인으로서든, 소비자로서든.. 재벌이나 스타트업의 성공한 창업자들 역시 나와 뭔가 비슷한 면이 있길 바라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조바심 내지는 말아야겠지만...
저는 39세 최성일입니다.
장도 보고 음식도 서빙도 직접 하는 일당백 사장입니다.
요즘 방송되는 KT AI 고객센터의 광고 카피입니다. 이 광고는 여러 에피소드가 제작되었는데, 소비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KT의 AI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줍니다. 삼성의 갤럭시 S22 광고도 마찬가지죠. 제품을 보여주기보다는, 소비자가 제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광고 말고 다른 사례를 볼까요. LG전자의 '룸앤티비'는 타깃을 캠핑족으로 바꾸고는 인기 역주행했죠. 사실 이 제품은 출시된 지 2년이 넘었고 기능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스탠바이미'가 인기를 끌면서 품절 대란이 일어나자 '캠핑' 콘셉으로 전환한 것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죠.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룸앤티비'는 거실이 아닌 방에서 쓰는 퍼스널TV가 주용도였습니다 (제 방에도 하나 있어요) 하지만 캠핑의 유행과 함께 발 빠르게 거치대 등의 액세서리 업체들이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죠. 여기에 '스탠바이미'가 출시되면서 카니발라이제이션*을 우려한 LG전자에서도 캠핑에 주목하며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게 된 셈입니다.
* 카니발라이제이션 : 제품 간 충돌로 서로 점유율을 잠식하는 것.
룸앤티비 사례에서 보듯 이제 소비자는 마케터가 미리 설정해둔 '페르소나(To-Be)'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식도 내 맘대로 안된다는데 소비자가 내 맘대로 될까요?!) 한때는 내가 만든 조각상이 사람으로 변하거나, 우렁에서 각시가 나오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그런 신화나 전설의 시대가 아니죠. 소비자는 이상이 아닌 현실(As-Is) 속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요즘 상품 페이지엔 직접 써본 소비자들의 활용기가 꼭 들어갑니다 (아니면 반대로 만든 이의 스토리가 들어갈 때도 있죠..) 책 제목도 '오십에 시작하는 인문학'이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같은 타깃이 정확하거나 스토리가 담긴 책들이 인기를 끕니다. 타깃과 활용법이 그만큼 구체적인 거죠.
KT의 AI 고객센터나, 갤럭시 S22의 광고가 정말 성공적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저 광고를 본 사장님이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제작하려는 누군가가 정할 일이니까요.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우리는 얼마나 공감 가는 스토리를 많이 발굴해 낼 수 있을까요? 우리 각자의 경험에 따라 맛있는 음식이 다르듯 소비자의 취향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고객 스토리의 숫자만큼 우리의 고객 수는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 세스 고딘,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에서 인용. 해당 부분의 내용을 살짝 인용하자면 '만약 당신이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려고 당신의 스토리에 물을 탄다면, 결국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 허양만의 만화, '식객'에서 인용.
내가 1등 브랜드(A)의 마케터라고 가정해보죠. 최근, 만년 2등 브랜드(B) 임원이 바뀌더니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도전을 해오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요새 B 브랜드 구매 후 인스타에 올리는 일이 많아졌고, 내 친구들은 이거 봤냐며 B 브랜드 영상을 공유합니다. 영업부는 우리 회사 마케팅 부서는 뭐하는지 모르겠다며 눈치를 줍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1등이란 건 가장 많은 소비자들이 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다들 그걸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누구나 쓰고 있으니 새로울 게 없거든요. 그러니 '샤이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맥도널드나 롯데리아는 그냥 생활이지만 '인앤아웃'이나 '고든램지 버거'는 줄을 서고 '공유'할 가치가 있습니다.
가장 많은 제품이 팔리고, 많은 소비자들이 있으면서도 이야기가 되지 않는 상황, 결국 해결 과제는 이 부분입니다.
난 이 브랜드를 쓰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우리 브랜드를 쓰고 있다고 커밍아웃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죠. 어느 카테고리든 1등 브랜드와 요즘 떠오르는 브랜드의 쇼핑몰 댓글을 비교해보세요. 1등 브랜드는 보통 배송이 빨라서 좋다거나, 역시 OOO 브랜드네요 같은 성의 없는 글이 많은 반면, 신생 브랜드는 추천받아서 샀는데 깜짝 놀랐다거나,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같은 적극적인 지지와 추천의 글의 비중이 높습니다.
이런 무관심(?) 브랜드의 마케팅을 맡았을 때 가장 의아했던 점은 왜 그 브랜드가 가진 많은 자산을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지 않느냐는 점이었습니다. 제품의 패키지, 캐릭터, 매장, 그리고 다양한 사은품 등.. 이미 소비자들과 형성된 많은 접점을 그대로 두고, 볼지 안 볼지도 모르는 새로운 광고 아이디어 회의만 하고 있으니 답답했죠. (물론 대행사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러면 안 되지만..)
스타벅스는 소비자들이 로고가 크게 새겨진 가방을 들어주고, 다이어리를 씁니다. (이들이 진짜 스타벅스 헤비유저일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저귀 브랜드라면 맘(mom) 타깃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콜라보해서 기저귀 가방을 만들 수 있구요. 곰표 밀가루 광고를 본 적은 없지만, 우린 화장품을 쓸 때도, 맥주를 마실 때도,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곰표 브랜드를 보고 있죠. (그리고 그걸 공유하고..)
지금은 '빙그레'나 '곰표' '시몬스' 등이 마케팅 성공 사례로 등장하지만, 이들은 일반적으로 대화의 주제로 등장하긴 애매한 카테고리(밀가루, 우유나 아이스크림, 침대 등)입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SNS 최적화된 마케팅이 없다면 지금처럼 언급될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 제품을 이야기하게 만들 아이디어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가진 모든 자산을 활용하여 소비자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와 연결시켜야 합니다. 소비자는 '난 트렌디한 사람'이라던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오늘부터운동' 등의 메시지를 나의 소비나 참여로 보여주고 싶어 하죠. (그래야 '그림'이 생기니깐..)
지금 희뜩(?)한 크리에이티브 보다, 우리 제품이 어떤 접점에서 어떻게 고객과 만날지, 그리고 그곳에서 소비자가 하고 싶은 어떤 이야기와 연결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과거 마케팅은 러브 마크가 된다거나, 로열티를 구축하는 것, 또는 TOM (Top Of Mind)을 끌어올리는 등 고객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무엇이든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또 소비자들의 메모리가 작아진 지금은 즉시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품에 따라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만들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자동차라거나, 여행 상품 같은 경우 (대부분) 바로 구매를 하기 어렵죠. 또 구매 후엔 소비자들이 공유를 해줘야 하는데, 여성 위생용품을 담당할 때는 미닝 아웃 개념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었구요.
따라서 소비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Action)을 하길 원하는지 명확히 설정해 두어야 합니다. 복수, 아니 기억이나 충성도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아닌, 자본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한 거죠. 공유라던가, 앱을 다운로드한다거나, 쿠폰을 받거나, 콜라보나 굿즈를 구매하도록 하는 등 흔적과 공유가 필수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4개의 법칙을 모두 적용할 수도 있고 그중 1~2개만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소비자와의 구체적인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젠 '좋댓구알'의 시대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