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케터를 위한 신(新) 개념어 사전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만약 사수가 없는 분들이라면 이런 말 들을 기회조차 없었겠지만) 월급 주는 회사에서 돈 받고 가르쳐주는 학교나 학원처럼 하나하나 가르쳐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듯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어쩌다 마케터'들이 대량 생산(?)됐습니다. 매일매일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정작 마케팅이 뭔지 난감합니다. 예전처럼 알아서 배우라는 선배들의 텃세가 아니라도 요즘엔 회사에서 뭘 배울 환경도 안되죠.
하지만 우린 일잘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럼 뭐부터 배워야 할까요? 어느 분야든 기초를 탄탄히 해야 합니다. 이것만 들으면 일주일 만에 뭘 할 수 있다.. 이런 류의 강의도 많지만 그건 특정 스킬과 관련된 거고, 그렇다고 마케팅 원론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있기도 바쁜 세상입니다. (정말 도움이 될지는 차치하고..)
그래서 저는 '키워드'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마케팅 원론에 나올만한 기본적인 용어의 '개념'이 어떻게 변했는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한번 정리해서 공유해 볼까 합니다. 좀 거창하게 포장해서 마케팅 신(新)개념어 사전이죠.
가장 먼저 선택한 용어는 '제품(Product)'인데요. 제품이 그냥 제품이지, 뭐가 더 있어? 할 만큼 뻔하게 생각될 것 같아서 이게 어그로(?)가 될까 싶긴 했지만, 너무나 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 오히려 먼저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결과는 두고 봐야죠..
예전엔 '제품'의 의미가 단순했습니다. 네이버 사전을 볼게요.
제품(製品) : 원료를 써서 물건을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들어 낸 물품.
영어로 보통 Product를 쓰죠. 마케팅에서는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것 중 물성이 있는 것을 제품, 그렇지 않은 것을 용역(Service)으로 구분했습니다. 큰 틀에서는 다 제품이구요.
근데 이게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좀 달라졌습니다. 플랫폼 회사들 같은 경우 '프로덕트 매니저(PM)'라는 직무가 있죠. 여기서의 프로덕트는 플랫폼 자체를 의미합니다. 프로덕트, 즉 제품이 플랫폼 내에서 팔아야 할 상품이 아니라, 회원들이 이용할 공간이 되는 셈인데요.
예를 들어 당근마켓을 생각해 보죠. 당근마켓이라는 회사의 '프로덕트'는 뭘까요? 플랫폼이나 서비스 등이 '프로덕트'가 되고, 실제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들은 정작 당근마켓의 것이 아닙니다. 플랫폼 레볼루션이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우버나 에어비앤비의 예를 들어 설명하죠.
광고 회사 하바스 미디어(Havas Media)의 전략 담당 수석 부사장 톰 굿윈(Tom Goodwin)은 이와 같은 변화를 “세계 최대의 택시 회사 우버는 한 대의 자동차도 보유하지 않고, 세계 최대의 미디어 회사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으며, 최대의 기업 가치를 지닌 소매 기업 알리바바는 재고가 없다. 또 세계 최대 숙박업체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라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플랫폼 레볼루션
전통적인 개념의 '제품'이 없는 회사들이 등장한 겁니다. 보통 이러한 사례는 '공유 경제'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죠. 하지만 전 '제품' 자체의 개념이 변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만들고 팔아야 하는 '제품'이 무엇이고 어떻게 변했는지를 모른다면 어떻게 마케팅을 하겠어요?
아래의 사진을 볼게요.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One and Three Chairs)'라는 미술 작품입니다. 각각 '의자'라는 하나의 개념에 대해 사진, 실제 의자, 그리고 사전적 정의를 배치해 놓은 것이죠. 여러분은 어느 것이 의자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시 제품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위의 작품을 본 김에 우리가 팔아야 할 제품도 '의자'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왼쪽부터 각각 P1. P2. P3로 구분해 보죠. P1은 브랜드 이미지, P2는 제품, 그리고 P3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하면 얼추 개념이 맞을 듯합니다.
* 브랜드 이미지는 소비자가 인식하는 브랜드,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판매자가 정의하는 브랜드의 개념.
작은 동네 가게가 아니라면 의자를 팔기 위해 브랜드를 만들 겁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에 비유해 보자면 본질(IDEA)은 실제 의자(P2)이고, 미디어에는 그림자(브랜드 이미지:P1)를 결합시켜 파는 거죠. 미디어의 시대가 되면서 브랜딩이 중요해진 이유입니다. 소비자는 미디어에 비친 이미지를 사니까요.
그런데 애매한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제 소비자들이 디지털 상의 '프로덕트'를 바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거죠. 앞서 당근마켓이나 우버 같은 경우입니다. 이들의 플랫폼은 소비자가 실제로 이용하는 제품(P2)이자 곧 미디어가 됩니다.
이를 다시 아래의 도식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럼 왼쪽의 굿즈(Goods)는 뭐냐구요? 쿠팡의 경우 최근 곰곰, 홈플래닛, 탐사 등 PB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죠. 사실 이 제품들도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쿠팡의 실제 제품의 후광 효과 덕에 판매되는 상품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굿즈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 이 제품과 굿즈의 관계에 대해선 얼마 전 올린 <오롤리데이> 관련 글을 참고해 주세요.
하지만 그건 일부 플랫폼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닌가요?
아닙니다. 사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이 이 부분입니다. 만약 플랫폼 기업만 디지털 미디어 세상에서 마케팅을 하고, 일반 기업들은 여전히 아날로그상에서 살 수 있다면 맞는 얘기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점점 더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그들과 경쟁해야 하죠.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Goods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가치는 Digital Product에 있고 Goods는 '부록' 정도죠. 쿠팡이나 마켓컬리의 의자는 굿즈인데, 우리 브랜드의 의자만 여전히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남아 있길 바란다면 그건 과욕입니다. 우리의 제품도 똑같이 굿즈(또는 일용품)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브랜드들은 'Digital Product'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Digital Product는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콘텐츠와 커뮤니티가 되어야 하죠. 우리가 스타워즈나 마블 영화(또는 BTS)의 팬이라면 그들의 콘텐츠를 보고,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분도 있을 겁니다. 결론은 디지털에서 소비자와 관계를 잘 형성하고 그러한 로열티를 기반으로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 같은데요. 이걸 굳이 제품의 정의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하는 점이죠.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디지털을 미디어로만 본다는 것이 다릅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고객과 공유되는 가치가 굿즈로 반영되어야지 그 반대, 즉 우리 제품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디지털을 보면 안 되는 거죠.
디지털 공간에서 고객과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제품입니다.
곰표의 경우를 보죠. 몇 년 전 곰표는 다양한 콜라보를 통해 엄청난 바이럴이 일어났죠. 그 이후 곰표는 그렇게 형성된 디지털 자산을 토대로 한 캐주얼한 '굿즈'들을 출시합니다. 그전까지의 곰표는 일용품(밀가루)을 만들던 회사죠. 전문가가 아니고선 백설과 곰표의 밀가루를 구분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지금 우리의 디지털 자산은 무엇이 있나요? 그리고 그 자산을 반영한 굿즈가 있나요?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제품을 디지털 상에 더 많이 노출하기 위해 애쓰고 있나요?
P.S. 개념어 사전이라더니 단어하나 설명하는데 스압이 너무 크다고 불만이신 분들도 계실 듯 싶습니다. 원래 개념 정의가 그렇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만 봐도 알 수 있죠. 양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