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케터만? 어쩌다 팀장은?
조직을 운영하는 경우 여러 타이틀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팀장(또는 '우리')으로 통일할게요. 아무래도 수적으로 가장 많기도 하겠고(요즘엔 '사장님'이 더 많은가요?), 팀장 레벨이 수용성이 가장 높을 것 같기도 하니 말이죠.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tragedy)이고, 멀리 보면 희극(comedy)이다라는 말이 있듯 팀장 역할도 때론 희극이고 때론 비극입니다. 업무 상으로만 보면 성과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겠지만 팀장으로서 가장 고민이 깊어질 때는 팀원들과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죠.
문제는 시간이 이 고민을 해결해주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죠. 팀원들과의 나이와 직급차는 점점 커지니까요. 공감을 형성할 여지는 적어지고 편하게 점심 한번 같이 먹기 힘들어집니다.
리더십 서적도 찾아보고, 이런저런 이벤트를 만들어서 친해져 보려고 하다가 또 한편으론 내가 만만한가 싶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나도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차피 한배를 탄 거라면 같이 열심히 좀 해주면 좋잖아..? 이게 나만 좋자고 하는 일이야?! 진지하게 충고라도 하면 역시 꼰대라고 수군대는 것 같고, 그렇다고 팀원이 갑자기 '팀장님, 저 면담 좀...'이라고 말하면 등골이 오싹해지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총체적 난국입니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도 당최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팀원들을 싹 바꾸거나 아님 내가 나갈 때가 된 건가? 싶은 극단적인 생각도 듭니다. (혹시라도 치킨이나 카페 창업을 생각하신다면 여기서 읽기를 멈추고 링크된 제 글을 참고하시고요...)
계속 읽기를 선택하셨나요? 그럼, 시각을 좀 다른 데로 돌려 보죠. 문제의 원인이 항상 내부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저는 두 가지 키워드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Negative & Positive.
언제가 좋을 때고 또 언제가 나쁠 때일까요? Negative가 좋을 때이고, Positive가 나쁠 때입니다. 적어도 리더, 팀장의 입장에서는요.
언제가 좋았나를 되짚어 보죠. 처음 창업을 했을 때.. 모든 게 열악한 환경이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매일매일 사고가 터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죠. 고생하는 팀원들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 맥주 한잔 같이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구요.
저는 광고회사에 다니다 보니 중요한 경쟁 PT를 들어갈 때가 많았습니다. 몇날며칠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잠깐 들어가서 옷만 갈아입고 오는 일들이 다반사였죠. 그렇게 함께 고생해서 수주를 하게 되면 세상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때가 참 좋았지.. 싶죠.. 근데 정말 좋은 건가요? 지나고 나니 좋은 것 같지만.. 우리가 다시 처음 창업했을 때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회사의 여러 복지와 연봉 등 예전으로 되돌리고 헝그리 정신으로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까요? 또는 매번 밤을 새워가며 회사의 운명을 건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게 하는 분들도 있죠. 워커홀릭들.)
그때가 좋은 이유는 우리가 공통된 위기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료애가 강해지죠. 흔히 독재자들이 국내 정치에서 위기를 느끼면 시선을 외부로 돌립니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위기감을 고조시키죠. 어느덧 독재자의 자잘한(?) 실수나 사소한(!) 내부 문제 같은 건 다들 잊고 맙니다.
이게 Negative 한 상황의 힘(?)입니다. 문제는 오히려 Positive 한 상황에서 생기죠.
이제 회사는, 그리고 팀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월급이 밀릴 걱정을 하거나 생존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탄탄대로인 것도 아니죠. 이걸 좀 더 정확히는 Neutral(중립)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Negative와 명확한 대비를 위해 Positive를 쓸게요.
암벽 타기를 예로 들면, 위를 보니 뿌연 안개 사이로 정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해서 꽤 많이 올라왔거든요. 하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더 까마득하죠. 그래서 마음이 급해집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마음, 그리고 추락했을 때의 충격이 어떤 건지 잘 알거든요.
강요된 위기감은 혼란을 줄 뿐입니다.
그래서 팀원들을 다그칩니다. 하지만 다들 시큰둥하죠. 이때 팀장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또는 나 때는 안 그랬는데.. 하는 생각이죠.
아닙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라, 상황이 달라진 겁니다.
사람과 상황의 예를 하나 들어 보죠.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치적 성향으로, 또 세대별로, 성별이나 또 소득에 따라 사분오열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툭하면 이게 나라냐하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걸리구요.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 볼까요? IMF 때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MZ 마냥 당시엔 X세대가 있었죠. 요즘 젊은이들은 걱정 없이 자라서 생각이 없다느니,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느니 하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랏빚을 갚겠다고 금을 모았죠.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간 것도, 자기가 저지른 일도 아닌 원유 유출 사고를 수습하겠다고 태안으로 달려간 것도 우리 국민들입니다.
지금 달라진 것은 사람 탓인가요? 그때의 나라는 지금의 나라보다 좋은 나라인가요?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달라진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푸틴이 아닌 이상 전쟁이나 IMF를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실 우리 회사(또는 내가)가 지금 많이 어려워' 같은 얘기로 위기감올 형성하려 했다가는 다들 업무 시간에 일 대신 잡코리아나 원티드를 뒤지게 되겠죠.
Post Negative의 시대, 즉 위기감이 아닌 다른 리더십과 솔루션이 필요한 때입니다.
솔루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황이 바뀐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명확히 짚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되는 걸까요?
소제목에 적은 대로 저는 '공기'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공기가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이런 표현을 쓰곤 하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어떤 분위기를 뜻하는 말로 쓰이죠. 일본은 그 정도가 우리보다는 심해서 '공기의 연구'라는 책이 있을 정도입니다.
공기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매우 강력하고 거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일종의 판단의 기준으로, 저항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공기 거역 죄'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초능력임이 분명하다.
공기의 연구, 야마모토 시치헤이
이 공기를 '기류'라던가 '눈치' '분위기' '흐름' 같은 말로 쓸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경우는 이걸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트레바리'라는 독서모임을 아시나요? 이곳의 소개 중에 가장 공감 가는 말은 '혼자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평소 내 취향이 아니거나 의지를 넘어서는 책을 읽게 된다는 거죠.
문화라는 것은 내가 하려는 무언가를 어색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내가 행동할 동력을 주죠. 좀 부정적으로 보면 위의 공기에 대한 설명처럼 저항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기도 하죠.
요즘은 돈을 내고 의지를 산다는 표현을 쓰는데요. 독서 모임이든, 헬스든.. 돈을 내고 나를 구속하는 거죠. 근데 정확히 내가 돈을 내고 산 것은 '문화'이자 '공기'입니다. 함께 토론하는 사람들, 땀 흘리는 사람들 속에 나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운동을 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할 것은 공기를 바꾸는 것
저는 독서 모임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님들도 꽤 많이 만났습니다. 이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는 자기 돈 들여 이렇게 자기 계발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회사 직원들은 너무 소극적이다.. 하는 얘기죠. 모임에서 직원을 뽑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구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번 반복하지만, 달라진 건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고 공기입니다. 지금 회의 때 아무 의견도 내지 않고 있는 우리 팀원이 다른 어떤 모임에 가서는 아주 적극적일 수 있는 거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거구요.
정리해 볼까요? 앞서 IMF나 전쟁 같은 상황들은 순식간에 공기를 바꿉니다. 평소에 이게 나라냐하던 사람도 나라를 위해 금을 모으거나, 총을 들고 나서게 만들죠. 독재자는 공기를 바꾸기 위해 이런 극약처방을 하지만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공기를 바꾸는 것입니다. 전쟁이 아니죠.
그럼 공기를 바꿀 다른 방법은 뭔가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제목에 적혀 있습니다. 바로 커뮤니티죠. 커뮤니티라면 축구나 볼링 동호회 같은 건가? 아니면 회식을 자주 하라는 건가? 싶으실 수 있습니다.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는 같은 목표(또는 취향)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겁니다.
회사 안에서의, 또는 밖에서의 위기감을 대체할 우리 조직만의 '공통된 가치'가 필요합니다. 이런 것은 과거부터 있어왔던 비전이나 미션과는 다릅니다. 비전이나 미션은 회사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거든요.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구요.
역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요즘은 기업들도 이런 커뮤니티를 마케팅에도 많이 이용하죠. 나이키는 '런클럽'을 만들어서 함께 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룰루레몬'은 '더스웻라이프'라는 이름으로 역시 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지원하죠. 공통적으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지속적인 의지를 후원합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MZ세대는 신의가 없다. 퇴직(이직)할 생각만 한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만, 역으로 말하면 회사에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발견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연봉을 낮춰서라도, 또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라도 도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흔히 수평적 회사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직급 대신 '님'을 부른다던가, 영어 이름을 부르는 거죠. 수평적 회사는 그런 형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느껴지면 수평적이 되는 거죠. 커뮤니티 모임들에서 우리는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공감이 가시나요? 고민이 조금은 덜어지셨나요? 오늘은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하는 방향성 측면에서 주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럼 커뮤니티는 어떻게 만드는데?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시간을 내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 쓰는 데도 꽤 시간이 오래 걸린지라.. 금방 올리겠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지만, 많이 응원과 격려를 해주시면 좀 더 빨리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