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에서 신뢰의 대상은?
우리는 누구를 믿을 것인가? '신뢰 이동'(레이첼 보츠먼)은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요즘 세상에 신뢰는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 이동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역적 신뢰'에서 '제도적 신뢰'를 넘어 현재는 '분산적 신뢰'로 가고 있다는 거죠. 이 책이 영어 부제를 보면 책이 이야기하려는 바가 좀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How Technology Brought Us Together And Why It Might Drive Us Apart.
한국어 제목인 '신뢰 이동'이라는 말만 보면 다분히 인간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뒤로 갈 수록 'Technology' 가 많이 나옵니다. 특히 블록체인에 이르게 되면 기술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저자는 '분산적 신뢰'의 핵심을 '플랫폼'과 '블록체인'으로 보는 듯 합니다.
저자는 마윈의 이야기로 책을 시작합니다. 블라블라카나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의 사례를 곁들이고 있죠. 저자의 자동차 구매 (이베이에서의) 경험이 주목하는 핵심은 어떻게 전혀 모르는 판매자와 거래를 할 수 있나? 라는 점입니다. 신뢰 이동의 초점을 내가 모르는 운전자, 집주인, 농부 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플랫폼의 역할에 좀 더 주목하고 싶습니다.
동네 구멍가게나 슈퍼에서 물건을 사던 시절, 우리는 메이커를 보고 -제조의 시대- 제품을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매주 이마트나 롯데마트에 들러 장을 보기 시작하면서 -유통의 시대- 우리는 '노브랜드'나 '초이스엘'의 제품도 부담 없이 삽니다. 누가 노브랜드의 제조원이 어디인지를 확인할까요? (전 합니다) 이제 쿠팡이나 지마켓에서 구매를 하면서는 -이커머스의 시대- 적당한 가격과 구매평 (일부 조작된) 을 조합해 구매를 결정합니다. 심지어는 네이버에서 한꺼번에 여러 쇼핑몰의 제품을 비교해서 사기도 하죠.
우리는 누구를 믿고 있는 것일까요? 이름 없는 제조사를? 만나본 적 없는 판매자를?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플랫폼이 아닐까요? 만약 자신의 신뢰를 저버리는 거래가 있을 경우 언제든 '반품'해버릴 수도 있고, 심할 경우 '응징'까지 가능하다고 우리는 믿고 있으니까요 (다만 귀찮아서 포기를..)
플랫폼이 이 거래에서 크게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면 (제품 노출과 결제 외에) 그건 큰 오산입니다. 플랫폼은 매우 치밀합니다. 공기와 같이 우리에게 편리함만을 줄 것 같은 플랫폼에 대한 지나친 신뢰는 제2의 페이스북 사태나, 세서미 크레디트의 현실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얼마전 한 기술 컨퍼런스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콘텐츠(정확히는 웹툰) 플랫폼을 개발한 회사가 발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궁금증이 드는 것은 기술적인 차이 외에 기존의 웹툰 서비스 업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하는 점이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인 분이 많았는지, 이 질문이 나오자 업체에서는 네이버나 다음의 수수료를 언급했는데, 블록체인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플랫폼 업체의 과도한 수수료 때문일까요?
또 하나.. 금본위제라는 것이 완전히 유명무실해진 지금, 이미 내재 가치가 없어진 '돈' 조차 그 실물은 10%가 채 되지 않는 신용사회가 됐습니다. 암호 화폐가 된다면 그마저도 없은 100%의 신용 거래인데, 사실 화폐는 주고 받는 사람의 신뢰 보다는 결국 궁극적인 지급 보증을 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깔려야 합니다 (지폐에 다 써있죠). 암호화폐는 현재와 같은 '투자'가치 이상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블록체인은 새로운 신뢰 모형을 제공한다.
정부나 은행 같은 중앙집권적 권위가 신뢰를 중재하지 않아도 되고,
서로 신뢰하지 못할 법한 사람들이 단일한 진실이나
공동의 사건 기록에 합의할 수 있는 신뢰 모형이다
신뢰 이동 - 레이첼 보츠먼
분산적 신뢰에 따라 정부, 은행 등이 중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야 말로 필요한 사람들끼리 거래를 할 수 있는 모델.. 이러한 자유는 과연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일까요?
2019년 한국의 언론 자유도는 역대 최고인 41위(국경없는기자회)에 올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언론 신뢰도는 38개 조사대상 중 꼴찌입니다 (로이터 저널리즘). 사람들은 언론이든, 정치든 '객관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 신뢰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자유가 꼭 객관성의 확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객관성'이란 것은 내가 중심입니다.
'분산적 신뢰'의 세상이 온다면 필연적으로 '신뢰의 분산'을 낳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죠. 문제는 신뢰를 얻기 위해 공통의 믿지 말아야 할 대상을 선정합니다. 믿지 말아야 할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고 이에 대한 ‘확증편향’으로 나아갑니다. 신뢰의 분산 속에 우리가 믿는 엉뚱한 가치가 사회를 휘몰아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듭니다.
혼돈을 수습하기 위해 '사토시'나 '부테린', 또는 '히틀러'나 '트럼프'를 불러오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