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의 시작
이 책의 저자는 본업이 공무원이며 블로거다. 전쟁사 분야에서 유명한 덕후라고 하던데, 난 그쪽 방면에 조예가 깊지 않아 잘은 모르겠고... 원래 그전부터 한번 읽으려고 별렀던 <중일전쟁:용, 사무라이를 꺾다> (916p)의 저자이기도 한데,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그 책 옆에 <중국 군벌 전쟁>이라는 더 두꺼운 책이 놓여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벽돌 책 성애자인가?!)
원래 한중일의 근대사에 관심이 많았으나, 근래 들어 일본 관련된 책에 좀 치우친 면도 있었는데.. 마침 관심이 갔던 중국 군벌에 대한 책이라니..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았지만, 한번 질러보기로 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사라는 건.. 황하문명과 전설의 시대에서 시작해서, 각종 왕조가 바뀌고, 우리나라와 몇 차례 전쟁을 한 게 나오다가.. 청일전쟁에서 패한 뒤 우리 역사에서 빠져나갔다가, 한국 전쟁 때 다시 한번 등장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나 싶다. (좀 더 나온다면 수교까지?)
예전에 역사를 배울 땐 근대사의 비중은 높지 않았다 국사도 그렇고, 세계사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근대사의 특징은 이에 대한 논의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탓에 계속 새로운 사료가 나와서인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원래 알고 있던 것과 정반대로 바뀌어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중국 근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오마이스쿨의 <다시 보는 중국, 중국 근현대사 강의>와 <차이나는 도올> 강의였는데.. 이 책이 저자 역시 이 강의를 봤는지.. 도올의 강의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저자의 말이 맞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도올 선생이 이야기한 대로 계속 알고 지낼 뻔했다)
국내에서 나름 중국통이라는 분들도 다르지 않다. JTBC에서 방영한 <차이나는 도올>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동북을 2대에 걸쳐 통치한 장쭤린-장쉐량 정권을 설명하면서 위대한 영웅이라며 극찬했다. 심지어 이른바 ‘고구려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만들어 우리 역사와도 연결 지었다.
그러나 동북 정권은 결코 우리 민족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과 결탁하여 독립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배척했다. 1910년대만 해도 만주를 배경으로 활발했던 독립투쟁이 장쭤린이 동북을 지배한 이후 크게 위축되어 일부는 연해주로, 일부는 상하이로 옮겨야 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그들을 호의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별로 없다
"중국 군벌 전쟁"중에서
또한 장제스(장개석)의 부인인 쑹메이링에 대한 부분 역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최근 모 역사 강사가 방송에서 야사 수준의 이야기를 했다고 지탄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장제쓰와 쑹메이링과의 내용 역시 그간 알려진 내용 대부분은 그런 수준이었다. [장쉐량(장학량)과의 삼각관계 등..]
최진기 강사의 추천으로 봤던 <송가황조>는 '쑹메이링'의 자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현재의 중국 공산당 정권에서 만들어진 영화인만큼, '쑹칭링' (쑹메이링의 둘째 언니, 쑨원과 결혼했다.)에 대해서는 '조국'과 결혼했다고 평하고, 장제스와 결혼한 '쑹메이링'은 '권력'과 결혼했다고 평한다.
하지만 아래 사진에도 나와 있듯, 우리가 장제스의 역할만 알고 있는 '카이로 회담'에서 '쑹메이링'은 처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만큼 (물론 통역 차 간 것이지만) 비중이 이 회담에서 높은 역할을 했다.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장제스의 역할이 컸다는 것도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쑹메이링이 함께 있는 사진,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한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에 학교에선 '선구자'라는 가곡을 음악 시간에 배웠고, 이 '선구자'가 의미하는 것이 독립운동을 하는 투사라고 이해했지만, 요새 새롭게 등장하는 얘기로 작사가 만주국을 찬양한 노래를 만들었으며 '선구자'는 곧 친일을 솔선수범(?)한 사람이었다고 하니.. 정말 역사, 특히 근대사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역사 교육에서 만큼이나, 우리는 '근대'를 지우고 살았다. 주변국 어디를 봐도 지폐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근대 국가의 기반을 만든 인물들인데.. 우리나라는 엉뚱하게도 조선시대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한때 10만 원 권을 만들면서 김구 선생이 언급됐다가 그나마도 없었던 일이 되면서 5만 원권이 최고액권이 됐는데....
일본 여행을 가면, 가장 부러웠던 것이 어딜 가나 잔뜩 깔려 있는 잡지였다. 그리고 서점에 가면 온갖 주제에 대한 책들이 가득했는데... 깊이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책들의 번역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부족할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외에도 최근 전문가들이 아닌 '덕후'들이 여러 방면에서 책을 내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분야의 덕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나에게 역시,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더 좋고...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결국 <중일전쟁>을 지르고야 말았다. '중일전쟁'이 먼저 나온 책이긴 하지만, 시간 상으로 보면 이 책에서 이어지는 역사다. 저자는 '국공합작'에 대한 책도 집필 중이라는데, 인문학에선 보통 'OO 3부작' 같은 것이 많이 등장하니.. 아마 책이 완성 되면 '중국 근대사 3부작' 이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