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지 말고 누를 것

by 든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사진작가를 야금야금 꿈꿔오던 나에게는, 나만의 필름 카메라를 소장하는 것이 큰 소원 중 하나였다. 언젠가는 돈을 모아 사고 말 테야 하는 생각만 가득한 채 어영부영 지내온 게 어언 10년. 대학교 2학년 때는 사진 교양도 듣고, 여행을 다니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들도 앨범 속에 가득하다. 그러나 막상 진짜 카메라에 손때를 묻혀가며 내 눈에 담은 풍경을 렌즈로 옮겨 담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실천하지 못하겠다 싶어, 올여름 급히 구매하게 된 것이 폴라로이드 카메라이다. 셔터를 누른 후에는 절대로 내 멋대로 사진을 보정할 수 없는,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나름 마음먹고 구매한 카메라에서 뽑아낸 첫 사진은 우리 집 강아지들의 자는 모습이었다. 찍어도, 찍어도 아쉬운 마음에 셔터를 연신 누르다 생각보다 값비싼 필름의 개수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정말 소중한 순간에만 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그 순간에는 미처 몰랐으나 지나고 보니 소중했던 시간들이 참 많이도 지나갔다는 것. 필름을 아끼겠다는 마음 하나로 기껏 산 카메라를 묵혀 두는 내 모습이 모순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지난 달 5일은 나에게는 나름 특별한 날이었다. 생일이라는 명목이 있었다. 그런 날조차 나에게는 충분히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걸까?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며 다음 날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나름 특별한 날이랍시고 그날만큼은 집에 돌아와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영상들만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문득 다른 이들은 자신의 가장 특별한 날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한 마음에 평소 애청하는 유튜브 채널의 생일 브이로그를 찾아봤다. 가족들과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담겼다. 화목한 모습에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문득 나도 새로운 나이를 맞은 첫 번째 날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고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깨끗이 씻고 나와 아무런 꾸밈없는 모습의 나를 담았다. 예쁘장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수한 모습이었으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의 기록이 훗날 가장 그리운 모습이 될 것이라고 믿는 마음에서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정해놓고 소중한 날이 아닌 일상의 작은 부분들도 지나고 보면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삶이라는 긴 걸음을 빼곡히 메우는 것은,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한 이벤트뿐이 아니다. 때로는 덤덤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프고 화가 나는 일상들이 모여 추억이 되고, 나와 우리들의 시간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그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지금으로서 미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