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코즘 (Paracosm)—한 사람에 의해 매우 구체적으로 설계된 환상 속의 세계. 주로 유년기에 창조된다.
여느 때처럼 텅 빈 집에서 레토르트 돼지 김치찜과 흑미 밥으로 간단한 한 상을 차려놓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발치에서 들려오는 반려견 두 마리의 규칙적인 코골이 소리를 제외하고 지나치게 조용한 공간을 채우려 넷플릭스를 배회하다 '신비한 동물 사전'을 보기로 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을 2016년 개봉 당일에 영화관에서 관람한 것이 마지막이었기에 내용이 가물가물했다.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2편까지 정 주행하게 되었다. 방대하고 복잡한 해리포터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영화 유튜버들의 세계관 정리 영상을 시청하고, 나무 위키에 기재된 다양한 캐릭터 분석 글들을 탐독했다. 20년 이상 깊이 발전해온 롤링 작가의 작중 세계관을 이해하며 한 사람의 상상력이 이렇게나 정교할 수 있음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유년 시절,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란 외동으로서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과묵하신 아빠를 닮아서인지, 말수도 적었으며 행동도 느렸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멀뚱하니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 외에 집에 남아 어린아이가 할 수 있던 것은 자신의 환상 속 세계를 그리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에 상영되던 만화를 보면서 스스로가 새로운 등장인물이 되어 이야기의 전개를 바꾸기도 하고, 다양한 사물들과 동식물들이 내게 말을 걸어준다 생각하기도 했다. 때로는 꿈에서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하고, 스스로 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믿기도 했다. 그 어처구니없는 믿음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지속되었다. 비록 다른 이에게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길가의 다양한 풀과 꽃, 나무를 관찰하며 나만의 식물도감을 만들었다.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내키는 대로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줬던 것 같다. 4학년 무렵엔 담임 선생님께 제출할 일기장에 내가 지은 소설을 적어 내기도 했다. 일기장은 나의 친구였다. 소설 ‘모모’에 빠져 있을 당시라 모모라는 이름을 붙이고 내 상상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비한 약초를 다룰 줄 아는 자매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다소 허무맹랑한 일기였지만 다정하신 선생님께서는 항상 칭찬의 말을 적어주셨다. 현실의 친구들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시간 나는 내 머릿속 세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세계가 실현되어 내 눈앞에 나타나길 바라고 기다렸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마음 너머에는 실제로 발을 들일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몽상가 기질이 다분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 도리어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일상을 살아가며 머리에 그려나가는 환상의 세계가 있다. 필요한 경우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상상의 요소들을 꺼내며 마음의 안식을 찾기도 한다. 이것은 철저히 사적인 여가이다. 현실 세계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쉽게 열어 보이지 않는 종류의 것.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간혹 나를 염세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나만의 파라코즘은 그만큼 나의 내면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며 외부의 침범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창조한 그것을 감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예컨대 롤링 작가의 세계관이 그런 역할을 한다. 때로는 타인의 상상력이 나의 것으로 흡수되어 기분 좋은 상호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 작용의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영감이 되어 머릿속에 아름다운 미장센을 그려내기도, 필요한 상황에 적당한 아이디어를 꺼내주기도 한다.
현실로 가득 찬 일상들이 유독 갑갑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 나만의 환상을 새로 그려볼 힘조차 나지 않는다면, 타인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판타지의 세계에 흠뻑 빠져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 보는 것은 어떨까. 무채색이었던 하루에 온갖 색과 향이 더해져 일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기운을 되찾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