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나 빌런은 있다
모처럼 용기를 내서 시작한 일이 코로나 시작과 함께였다. 준비하다 보면 잠잠해질까 시작하고 살살하다 보면 잠잠해질까 그러다 2년이 지났다. 개업하고 1년 반쯤 지난 시점에 집을 이사했다. 고립되어 있는 듯한 그 신도시를 떠나고 싶었고 집을 옮기니 교습소도 이전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옮겼어야 됐는데, 새로운 동네를 탐색하기 위해 조금 쉬어보기로 했다. 조금 쉬려던 게 많이 쉬게 됐다. 최근 다시 상가를 알아보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내가 이전의 상가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다시 떠올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코로나 기간의 내 사업경험은 참 애석하고 힘들었다 앓는 소리를 하기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줬다. 사실 덕분에 욕심을 내려놓고 유지할 수만 있어도 좋다 싶었다. 다행히 월세 외엔 딱히 나가는 돈이 없었고, 아르바이트에 비해 여유롭게 수업할 수 있어 좋았고 수입도 부침이 있었지만 그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전 글에 쓴 전기요금문제에 이어 상가에 입주해 있으면서 생기는 하찮은 문제들을 써보려 한다. 하찮지만 예기치 못하게 불쑥 다가왔을 땐 다소 충격적이었던 내 경험담들이다.
안 좋은 일들을 확대해 생각하기보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생기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을 공유해 본다.
ep1
천재지변은 어디에나 생긴다. 별거 아니지만 가장 황당했던 일은 태풍에 어닝이 날아간 거다. 이전 세입자가 설치해 둔 거라 딱히 비용적으로 손해 봤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 어닝은 내가 이 상가를 선택한 요소 중 하나여서 아쉬웠다.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어닝 때문에 2차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풍경보가 있던 다음날 출근해 보니 어닝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ep2
가장 오래 해결되지 않았던 건 화장실문제다. 여긴 아파트 상가의 가장 외진 동으로 미용실, 세탁수거업체, 속눈썹연장, 미술교습소(나,) 수학학원, 염색방, 반찬가게가 있는 1층짜리 상가다. 단층 건물이지만 화장실은 단차가 있어 비탈을 내려가 건물뒤로 가야 하는 구조였다. 남녀 화장실이 구분되어 있고 세탁소(편의상 세탁소라 하자)랑 수학학원만 남자 운영자고 나머지는 여자 사장님들이다. 사장님들은 나포함 대부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처음엔 남녀 화장실을 청소하시던 여사님이 계셨는데 이 여사님이 그만두셨다. 얘기했듯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점심 먹으러 집에 가는 경우도 많고 이 상가 화장실을 잘 쓰지 않았다. 수학학원에 오는 애들은 길어야 한 시간 수업이라 굳이 화장실에 가는 경우도 드물었을 것이다. 뭐 결론은 별로 관리하지 않아도 그다지 지저분하지 않은 화장실이란 말이다. 그래서 이주일에 한번 청소해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정도고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드렸다. 이 비용은 공동관리비(수도, 전기) 요금과 나눠서 한집에서 3만 원 정도씩 부담했었다. 기존의 청소 여사님이 그만두시고 남자 화장실은 세탁소랑 수학학원 두 사장님이 직접 청소하시겠다고 했다. 화장실 한 칸으로 월 10만 원(일주일에 하루고 한 시간 미만이었지만) 받으러 오겠다는 새로운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여사장들도 번갈아가며 청소를 하기로 했다. 나는 이게 별로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교적 사용빈도가 적은 편이긴 해도 나는 최소 네다섯 시간을 있고 커피를 줄곧 마시다 보니 하루에 한두 번은 이용했다. 아이들도 서너 시간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드물지만 가끔 이용했다. 여자아이들이 대부분이고 난 불쾌한 경험을 주기 싫어 내가 당번이 되었을 때 깨끗이 청소를 했다. 개인적으로 화장실청소는 청소 후 반짝거리는 게 좋아 좋아하는 청소다. 문제는 아무리 봐도 다른 분들이 청소를 안 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반장도 아니고 이걸 항의하기도 그렇고 참 마음만 불편했다. 간혹 청소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물이나 뿌려놓은 정도였지 세제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행여 내 순서가 아닌데 화장실이 더러우면 최소한 변기라도 닦아뒀다. 혹시 쓰게 될지 모를 내 학생을 위해....
이걸 좋은 맘으로 했으면 나는 큰 사람이겠지만 나는 유지가 안 되는 화장실을 볼 때마다 부아가 났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한 달에 한번 내가 당번인 날이라도 꼼꼼하게 청소를 했다. 전등이 나가면 내가 사다 놓은 전구와 의자를 들고 건물뒤편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전구를 갈아놔도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결국 한 달에 10만 원에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실 여사님을 구했고 청소비를 2만 원씩 걷게 됐다. 그런데 청소상태는 오히려 내가 한 달에 한번 깨끗이 할 때 보다 더 나빠졌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다음번엔 절대 공동화장실이 있는 건물에 가지 말아야지 하고.
ep3
1층상가는 노출되어 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아무나 들어온다. 영업하시는 분들, 포교하시는 분들.... 수업중일 경우 조용히 수업 중이나 나가 달라고 하고 혼자 있을 땐 문을 잠가뒀다. 그리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뿌리는 대부업체 명함은 정말 기술 좋게 문 아래로 들어온다.
앞쪽에 에어컨 실외기를 두었는데 그위에 그뒤에 별의별 쓰레기를 다 버린다. 커피컵 답배갑은 일상이고 누구에게 받았는데 먹기 싫었던 음식이었던 건지 포장된 음식을 실외기 뒤에 숨겨놓은 것도 세 번이나 있었다. 열어보진 않았지만 한 번은 검은 봉지 안에 반투명 팩에 담긴 뻘건 국, 검은 봉지 안 흰 봉투에 담긴 튀김, 핫도그였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엔 똥을 싸놓는 경우도 있다더니 이건 양반인가?
ep4
교습소가 있던 상가는 비탈길에 있어 입구가 높았다. 이전 사용자가 고맙게도 데크를 만들어뒀다.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아파트 앞 상가다 보니 아이들은 길로 가다가 이런 데크가 보이면 '반듯이' 올라선다. 쿵쾅쿵쾅 그리고 옆집 데크로 타고 올라간다 쿵쾅쿵쾅, 수업을 하는 입장에선 이게 신경이 쓰이지만 데크로 다니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걸음마에 한창 재미 들린 아기인 경우 어른의 목소리도 한몫한다. 옳지! 그렇지! 점프! 아이고 잘했네! 아니 여기 수업 중이라고요. 그래서 또 마음먹었다 다음번엔 1층에 가지 말아야겠다.
ep5
마지막은 기물파손빌런 에피소드다. 한 번은 출근하는데 상가 사장님들이 모여있었다. 나를 보고는 내 실외기의 보행자보호용 덮게가 찌그러졌다고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날개 두 개가 찌그러져 있었다. 내 실외기는 크기가 커서 걷어 차이고도 자빠지진 않았지만 반찬가게 실외기는 넘어져있었고 수학학원 실외기는 턱에서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걷어찬 것 같다고 말하며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경찰이 왔다. 관찰카메라에 취한 20대 남자가 야무지게 각각의 실외기를 걷어차는 게 찍혔다고 했다. 나보고 신고하겠냐고 했고 다른 사장님들을 위해 신고하는 게 좋으면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소장을 쓰거나 출두해야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저는 딱히 피해본 게 없으니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이후 사과를 받았는지 피해보상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큰 피해가 아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 사과받고 흐지부지 끝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