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꾼의 피가 흐른다
요즘 다시 상가를 보러 다닌다.
부동산사이트 보는 게 취미라 관심 있는 지역의 시세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가게든 사무실이든 뭔지가 눈에 잘 안 띈다는 거다. 다시 화실을 시작하려고 하는 데 몇 가지 상황이 달라졌다. 내 도박기질이 상황을 달라지게 했다.
제일 큰 문제는 지난번에 투자했던 보증금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늘어났다 제자리가 되었다. 이전에 하던 교습소의 보증금을 받아서 착실하게 고이고이 간직했다. 결국, 난 그 돈을 지난여름 들끓는 2차 전지에 투자했다. 그렇게 곧 유용할 돈을 주식에 투자하지 말랐지만, 그건 투자가 아니고 도박이라지만, 하루에 10% 이상 오르내리는 주가를 보면서 한두 번만 재미 보자 했다. 내게 갬블러의 피가 흐른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해외여행 시 한 번씩 들르게 되는 카지노 슬롯머신 앞에 앉으면 살짝 흥분하는 나다.
뭐 소심한 갬블러라 10원 20원짜리 코인을 배팅하는 슬롯머신 앞에 앉아 3만 원~5만 원까지만 쓰겠다며 그정도 금액에 흥분감을 맛보면 족하다 했다. 나는 항상 이렇게 이 돈을 다 쓸 때까지로 제안을 뒀었다. 그렇다! 나는 소액이지만 항상 갖고 간 돈을 다 날릴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지인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리고 미국에 거주 중인 그녀는 인근의 카지노에 30불~ 50불을 들고 종종 남편과 데이트를 간다. 그녀가 슬롯머신을 즐기는 묘미는 한번 재미를 볼 때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게 운이 좋으면 커피값이 되고 운이 아주 좋으면 저녁값이 된다는 거다. 영 운이 안 따라 계획한 돈을 거의 잃어갈 때도 한 번은 소소하게 터지고 그럼 원금에서 조금 손해를 봤더라도 그만둔단다. 그러니까 정말 한방! 크게 한방을 노리는 게 아니고 그저 소소한 한방을 노리고 손실을 최대한 피한다 거다. 아니 이렇게 지혜롭고 귀여운 갬블러를 봤나? 그리고 나는 주식투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주식투자를 갬블러처럼 하면 안된다는게 정설이지만, 발을 담궈 본 사람이라면 영 다르지 않다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차 전지 투자는 한참 오르기 시작할 때 뒤늦게 들어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들끌고 있을때여서 애초에 장기투자를 할 계획은 아니였다. 처음엔 내 계획대로 그럴싸했다. 이대로라면 트래이딩을 더 전문적으로 할까 하는 야심까지 들었다. 잠깐이지만 화실이고 그림이고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몇 번 재미를 보며 트레이딩을 했다. 그때 그만뒀어야 되는데 말이다. 나란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문제의 그날 7월 24일 미친 듯이 치솟았다가 미친 듯이 떨어졌다. 그때 정리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반복해서 그만뒀어야 하는 시점을 떠올리니 헛웃음이 난다.) 나는 오른 그 시점의 내 자산금액의 변화를 보고 말았다. 그 금액이면 원금을 두고 다시 보증금을 넣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 고점은 7개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주식초짜가 그렇듯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장기투자자가 되었다.
아 뭐 이런 한심한 소릴하고 있나 싶겠지만 사는 게 다 그렇더라. 망설이다 보면 기회가 쪼그라들기도 하고 고과욕에 눈이 멀어 결단을 미루다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목표로 한 금액에서 팔아야 했는데 욕심이 과했다. 그리고 점차 줄어드는 걸.... 멍하니 지켜봤다. 공매도 금지가 발표된 날 그래 그때라도 팔았어야 되는데.... 적어도 그보다는 더 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떨어졌다.
뭐 그렇다고 내가 갖고 있던 원금이 줄어든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주식에서 발을 빼기엔 너무 아까운 뭔가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보증금을 좀 줄이기로 했다. 작아도 조금 지저분해도 나 혼자 그림 그리고 한두 명 수강생만 받으면 족하 다했다. 하지만 저렴하다 싶은 물건들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너무 나쁜 컨디션으로 다른 지출이 예상되는 물건 교통이 너무 안 좋은 곳 등.... 당연하게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싼 곳에 가서 월세부담 갖지 말고 혼자 그림 그려야지 했다가, 그래도 수강생을 한둘이라도 받으려면 이것보단 나아야지 싶다가 그럼 다시 월세가 부담스러워지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 단점들 중에 감안해야 하는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서 단점들을 조금 더 보완해 투자하는 방법도 아직 유효하다. 이건 내가 나아갈 방향을 잃었다는 착시가 들게 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면 선택하기를 두려워해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내 화실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