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가장 강력한 특성은 바로 놀랄만치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카카오톡에 배너 광고가 처음 생겼을 때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지만 현재 난 그 존재감을 거의 모든 순간 느낄 수 없다. 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웹과 상호작용하며 디자이너의 혁신적인 제안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사용자는 없다. 사용자는 최소한의 노력만 들여 자기 용무를 마치기 위해 탐욕의 상인처럼 시도 때도 없이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렇기에 정독이 아닌 훑어보기에 익숙하며 최선이 아닌 최소를 택하고 작동원리를 학습하고 이용하는 게 아니라 찍어서 맞기를 바란다. 이때 수 틀리면 감점이다. 이런 인내심도 없고 이기적이며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니 한숨부터 나오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는 기회다. 10 정도의 수고를 예상한 사용자가 7의 수고만 들이도록 도와준다면 남은 3은 호감과 고마움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3의 기회를 만들고 넓혀가게로 UX 디자이너가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두껍게 다루는 두 부분이 있는데, 바로 위치 시스템(내비게이션, 표지판, 빵부스러기)과 사용성 평가 부분이다. 웹 공간과 가장 비슷한 물리적 공간을 예로 들라면 아마 인천의 부평 지하상가에 가깝지 않나 싶다. 세계 최고 규모의 지하상가라는 이 곳 내부는 랜드 마크는커녕 북극성조차 없는 거미줄 같은 공간이다. 인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길을 잃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용자는 링크를 타고 그런 공간 어딘가에 급작스레 덩그러니 놓인다. 이 미로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몇 년 전 부평 지하상가가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가장 신경 쓴 티가 많이 나는 점은 고객들의 위치 정보와 방향 알림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길치들에게 악명 높던 부평 지하상가가 리모델링을 통해 사용성을 개선했듯, 저자는 UX 디자이너 또한 투박하더라도 위치 정보를 크고 강렬하게 항상 제공하며 물리적 제약을 없애는 홈버튼과 검색 박스를 항상 사용자 곁에 두라고 조언한다.
그다음으로 사용성 평가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타겟과 맞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외부인의 사용성 평가를 거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타노스 말고 심리학 용어인데,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건 그걸 모를 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럼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생긴 정보 비대칭은 불통의 벽을 만들어 낸다. 지식이 저주를 내린 셈이다. 이로 인해 제품 개발자는 상대가 충분히 알겠거니 하는 부분이 생기고 사용자는 여기서 벽에 부딪힌다. 이 벽을 깨기 위해 평가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작은 차이를 캐치하고 개선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큰 금액을 들여 평가단을 모집하고 폰에 카메라를 이어 붙여 스크린을 살핀다. 나는 다른 사람이라며 자기 최면을 걸고 내부적인 테스트를 매달 반복하기도 한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Don't make me think로 '나를 생각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무기력감이 절로 피어오르는 제목이지만 표지의 갈 곳 잃은 불안한 커서를 가만 보면 무기력과 타율성이 이 제목의 모든 것은 아닌 듯하다. 약간의 상상력으로 캐릭터성을 부여해보자. 사용자는 덜덜 떨리는 지팡이가 아닌 커서를 짚은 길 잃은 노인일 수 있다. UX 디자이너는 약간의 연민과 넘치는 친절한 보이스카웃 대원처럼 그들을 최단경로로 안내해야 한다. 혹은 마우스가 덜덜 떨릴 정도로 분노에 가득 차 자신 외에는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는 마초남 일 수도 있다. 이럴 땐 범죄 협상 전문가처럼 심리적 자극은 줄이면서 냉철하고 이성적인 설득을 통해 협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장소가 웹과 어플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하는 게 생각처럼 어렵지는 않다는 게 저자가 전하는 희망적인 부분이다. 혹자는 '평균 사용자'라는 환상의 벽을 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지만, 보이스카웃 대원이나 협상가처럼 끈질기게 소통하면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P.S 떨리는 커서를 보니 '불안한 눈빛'이 생각나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오랜만에 들었다. 사용자가 개발자에게 하는 메시지의 가사라고 생각하니 슬픈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