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다녀온 며칠 후, 아이들이 예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주말이면 다양한 경험시켜주겠다고 아이들을 여기저기 끌고 다닌 덕에 첫째는 으레 주말이면 어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이 모냥이라 당시엔 자주 그러질 못했다. 설명을 잘해주면 막무가내로 떼쓰는 아이들은 아니지만 엄마가 아픈 게 괜히 미안했다. 몸이 밖에 다니면 안 될 것 같은 상태이긴 한데, '별 일이야 있겠나'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웬만한 아쿠아리움엔 다 가봤고 우리집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이 있다기에 검색해봤더니 규모가 작다고 쓰여있었다. 어딜 가든 이왕이면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으면 조금 큰, 제대로 된 곳에 가보자는 게 나의 지론이라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첫째만 데리고 한 번 가봤던 63빌딩에 있는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기억력이라면 자신 있는 나였지만 나이가 하나 둘 먹고 급기야는 오늘 점심에 뭘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한 상태라 몇 년이나 지난 곳이 처음 간 곳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누구 결혼식이 그 근처라 끝나고 잠깐 들렸었다는 사실과, 셋이 찍은 사진 한 장이 내 기억의 전부이다. 규모가 그렇게 작은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집 근처에 있는 곳에 갈 걸 살짝 후회가 된다.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운전이라, 아마 그래서 애기들이랑 놀러 가는 걸 더 즐겨했을 수도 있는데 그날은 얼마 안 가 평소랑 다르다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의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숨 쉬는 게 쉽지 않았다. 거친 숨을 운전하면서 몰아쉬니 뒤에 있는 첫째가 걱정하는 투로 계속해서 물었다.
엄마, 괜찮으세요?
엄마, 숨 쉬기 힘드세요?
엄마, 그 1577, 그거 뭐죠? 대리기사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엄마, 안 되겠어요. 얼른 대리기사 불러요.
자동차 라디오에서 가끔 나오는 대리기사광고가 기억났는지 그걸 생각해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게 너무 감동스럽고 대견하면서 한 편으로는 미안했다. 그리고 아이가 내 옆에 있어서 든든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대 그날은 거기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장거리 운전에 나 혼자도 아니고 나의 목숨보다 더 귀한 아이 둘을 태우고 어떻게 보면 음주운전만큼 위험한 짓이었다. 출발하자마자 징후를 느꼈다면 아이들에게 차라리 실망을 안겨주더라도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그때 나의 공황장애 증상을 너무 과소평가했고, 어리석었다. 가끔 생각하면 섬뜩하기조차 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래도 무사히 63빌딩에 도착하여 1층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대충 때우고 드디어 아쿠아리움에 입장했다. 모든 아쿠아리움이 그렇지만 어두컴컴한 게 유독 그날은 들어갈 때부터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관람을 반 정도 하다 보니 인어공주 쇼가 곧 시작할 예정이니 대형 수조 앞 바닥에 앉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운이 좋게 애기들이랑 가장 앞 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의 옆과 뒤에 빼곡하게 둘러싸며 앉게 되었는데 방송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사람들 웅성웅성대는 소리와 더불어, 뒤에 앉은 아이들이 움직이면서 자꾸 툭툭 치는 모든 상황들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갑갑해서 도저히 거기 앉아있을 수 없어서 아기들한테 둘이서 쇼를 관람하라고 하며 나는 뒤쪽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벤치에 자리를 잡은 나는 옆에 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나의 앉은키보다 높은 물체가 있어서 거기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러자 정말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느낌을 받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고 나만 그곳에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내가 거기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연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비스듬히 기댄 채 어서 아이들이 빨리 내 앞에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공연이 언제 시작되고 끝이 났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시간이 지난지도 모르게 한 동안 그 상태로 있다 보니 나의 보물들이 웃으며 내 앞에 다가왔다.
엄마, 재미있었어요!
그제야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휴~~ 이제 살았다.
내가 겪은 최고의 공포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 그중 하나는 그날의 경험일 것이다. 정신과에 처음 방문하기 전 '공황장애 체크리스트'라는 걸 인터넷에서 검색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 의아하게 봤던 항목이 비현실감이라는 단어였다. '비현실감? 그게 뭐지? 어떤 느낌이지? 라며 막연한 궁금증이 들기도 했고 내가 느꼈던 숨 쉬기 힘들거나 가슴 통증과 같은 다른 공황장애 증상과는 다른 범위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겼었다. 내가 궁금해해서 알려주려고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고 다행히 그때 이후로는 그런 증상은 없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꽤 작았던 63빌딩 아쿠아리움에서 나와 패키지에 포함되었던 전망대 관람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 전부터 첫째가 엄마 절대 운전하면 안 된다고, 꼭 대리기사를 불러야 한다고 성화를 해댔지만 엄마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안심을 시키며 결국 끝까지 거친 숨을 쉬어가며 집까지 꾸역꾸역 내 손으로 운전해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하루 종일 신나게 놀다가 차에 타면 잠이든 채로 집으로 오는데, 그날은 그 어린 게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첫째는 잠도 안 자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엄마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미안함으로 시작한 아이들과의 외출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상상치 못했던 공포체험과 또 다른 죄책감으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