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증상입니다.

by 보물정원


좀 전에 먹은 커피 때문인지 긴장해서인지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 두세 번 다녀왔고 휴대폰으로 그야말로 '킬링타임'용의 영상이나 글 들을 의미 없이 쳐다봤던 것 같다. 세 시간은 기꺼이 기다릴 의향이 충분히 있었는데 다행히 두 시간 반 정도가 지나자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때까지 숨을 계속 가쁘게 몰아쉬던 나는 진짜 정신과 의사를 본다고 생각하자 한 층 더 긴장되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 간호사가 안내해 준 방 앞에서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평소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분야 책들도 꾸준히 읽었었고, 방송에서 봐왔던 오은영 박사님이나 노규식 박사님을 보면서 정신과 의사에 대한 나의 환상이 있던 걸까? 정신과 의사는 '이래야 한다.'는 나만의 프레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라면 당연히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이해해주고 인자한 미소로 반겨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직접 대면한 정신과 의사는 머릿속 그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사하며 들어가는 환자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고 본인의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머리 모양은 '하이칼라 반대기'에 갸름한 얼굴이 딱 봐도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모습 그 자체였다.




나는 증상에 대해 대략적으로 말을 했고 의사는 알겠다는 듯이 몇 가지 질문을 한 뒤에 공황장애 증상이며 우울증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병원에 가기 전부터 내가 겪고 있는 증상들이 공황장애인 건 알고 있었기에 의사의 입을 통해 듣는 진단명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그전부터 숨을 쉬기 힘들고 속이 메슥거리고 가슴이 아픈 이런 증상이 공황장애의 증상임을 찾아봐왔던 터였다. 다른 사람들이 적은 글들에서는 심장 관련 검사들도 하고 돌아 돌아 정신과에 마지막에 가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진단을 받아서 무척 당황스럽거나 놀랍다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난 열심히 검색을 한 덕인지 그런 수고는 하지 않고 바로 정신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의사가 공황장애 증상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볼게요. 큰 개가 다가오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맞아요. 그건 정상이죠. 그런데 지금 환자분에겐 큰 개가 안 나타났어요. 그런데 그런 증상이 일어났다는 건 잘못된 거죠.




아...그렇구나. 나의 상황과 내가 겪는 병에 대해 한 번에 이해가 갔다. 그러면서 하이칼라 반대기 의사는 어떤 상황이 일어날 때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공황발작이라고 하며, 그게 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것이 공황장애라고 말했다. 공황발작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겪지만 그중 일부만 공황장애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요?"




어.....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 순간 과거를 되짚어보니 이 증상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크게 기억나는 건 시어머니로부터 막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엄마가 나의 의견과 다르게 일방적으로 우리 애기들 봐줄 사람을 구했다면서 통보하듯이 전화를 했을 때였다. 내가 화가 나서 전화를 끊자 엄마가 계속 전화를 했는데 그때 내 손이 막 떨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무척 공포스러웠던 감정까지도...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고, 원래도 전화를 안 좋아하는 내가 그 사건 이후로 '폰포비아'를 겪고 있는 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런 게 공황발작 증상이었노라고 이해가 되었다.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몇 번."




그 이후에 나의 청소년기와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청소년기에 친구들이랑 지내는 게 무척 즐거웠다고 말하자 의사는 약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너무 이런 분야의 책을 읽은 탓인지 솔직히 너무 뻔한 질문들이었다. 심리학 책들에서 원부모와의 관계나 학창 시절 대인관계에서 정신적인 문제들의 원인을 찾는 내용들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난 나의 과거에 대해 충분히 고민을 해본 탓이었는지, 그런 의사의 질문이 너무 식상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본인의 배운 지식대로 나의 청소년기나 부모와의 관계 어느 하나에서 내 지금의 증상을 발견해야 한다는 의지가 약간 웃기게 다가왔다. ㅎㅎ 나는 '그런 것 말고 당신이 전문가니까 뭔가 그 이상을 내놔야지.'라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심리적 CPR'을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 의사이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그건 알겠어. 그럼 진단서는? 오직 나의 하나의 목표인 진단서를 써줄 수 있냐 물어보자 의사는 말했다.




"진단서를 초진 당일에는 써줄 수 없습니다."




헉...뭐라고??? 내가 어제부터 오직 이거 하나 얻자고 이 고생을 하는데, 왜? 왜?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물었다.




"이 병원 홈페이지에 여긴 당일에 진단서 발급까지 가능하다고 쓰여있어서 여기에 온 건데요. 아닌가요?"




"맞습니다. 예약을 하고 오셨으면 당일에 받으실 수 있어요. 검사를 받으셔야 진단서를 써드릴 수 있는데, 검사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늘은 예약이 다 찬 걸로 알고 있어서 검사 날짜를 간호사랑 상의하고 예약해주세요."




기운이 빠졌다. 전 날 밤부터 잠도 못 자며 생각에 생각을 하고 휴직 계획에 도달하여 거기까지 간 건데...너무 절망스러웠다. '그럼 계속 회사에 가야 한다고? 이 상태로 그 부장을 다시 만나야 한다고? 말도 안 돼!!'




일단 우겨서 될 일은 아니었기에 알겠다고 하고 진료실을 나와 의사가 말한 간호사와 검사에 관한 상의를 했다. 그 간호사에게도 진단서에 대해 묻자 간호사는 다른 병원은 이렇게 당일에 진단서를 절대 안 써주지만 자기네 병원에서 실시하는 비싼 검사를 하고 그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단서를 빨리 발급이 가능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ㅎㅎ 어차피 병원이 자선사업도 아니고 그 깔끔한 인테리어에 돈을 많이 쏟아부었으니, 여러 직원들의 인건비며 인테리어 비용과 임대료를 충당하려면 비싼 검사비용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 그건 아무래도 난 좋았다.^^ 검사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뉘는데 정 급하면 하루에 다 하지 말고 나눠서 실시하자고 했다. 난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환영하며 문답지는 그날 하고 돌아오고 다른 날 뇌파검사나 상담 검사 등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문답지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평소나 최근에 관한 나의 상태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최근에 어떤 마음이 들었냐, 어떤 기분이냐, 평소에는 내가 어떤 성격이냐, 가족이나 친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냐, 현재의 고민들은 대체로 어떤 것들이냐...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문답지에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바로바로 대답을 하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학창 시절 시험 보듯이 아주 진중하게 검사에 임했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끝난 후에 배도 고프고 힘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다른 병원에 가보기도 하고 검색도 하면서 안 사실인데, 그 의사나 간호사의 말대로 정신과는 초진 당일에 진단서를 대체로 써주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이면 모를까, 동네에 있는 병원에서는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꾸준히 진료를 한 후에 진단서를 발급해준다. 진단서를 요구하는 환자 입장에서야 야속하긴 하지만 그걸 써 주는 의사 입장에서는 향후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질 수도 있기에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다른 데가 아픈 건 눈으로 보이지만 정신이 아픈 건 겉으로는 확인이 어려우니 만약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거짓으로 연기한다면 그걸 입증하기 쉽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 병원에서 빨리 진단서를 써주는 것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의사가 냉정한 건 아쉬웠지만 그날 그 병원에 간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나 스스로를 칭찬한다. 비록 그날 원하는 것은 얻지 못했지만 거기에 감으로써 나를 스스로 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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