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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미 Feb 04. 2018

[영화] 원더(Wonder)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아이. 세상을 꿈꾸다.

                                                                                         

 

세상에는 수많은 ‘다름’들이 있다. 가끔 우리는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아 아닌 그저 타고난 것을 특권으로 여기고 평범과 다수의 시선으로‘다름’을 재단하고 분류해버린다. ‘다르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저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닌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저 다수와 소수가 존재할 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많은 다수들은 소수를 ‘다르다’고 여기고 조금은 특별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다름’의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소수적 보편성’을 지닌다. 영화 <원더>는 어기를 통해 대표되는 ‘세상의 모든 다름’은 존중받아야 하며, 나아가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10살 어기는 헬멧 속에 갇혀 산다. 자신이 남들과 조금 다른 외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기는 작고 작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우주를 꿈꾸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소년이기도 하다. 그러게 집에서만, 자신의 헬멧 속에서만 꼭꼭 숨어 지내던 어기에게 초등학교 입학이란 모험이 몰아닥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스스로 움츠러드는 아이가 엄마 아빠의 응원으로. 친구들의 도움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이 평범하지만 따뜻하게 그려진다.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세계이고, 그곳에서의 생활이 관계의 전부다. 그런 세계에서 나만 다르다는 것은 어떤 감각일까? 누군가 항상 나를 몰래 훔쳐보고 있고,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는 세상에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어린 어기는 그런 어려운 벽 앞에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만의 세계를 벗어나 헬멧 밖으로 나온다. 


 이 이야기를 한 줄로 말하면 남들과 조금 다른 아이 어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한 특별한 소년의 성장기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어기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기 주변에 그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눈을 맞추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엄마와 자식을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아빠. 그리고 조금 특별한 동생 때문에 자신이 늘 뒷전이어도 항상 이해하려 노력하는 비아. 처음에는 선생님의 부탁이었을지도 몰라도 결국은 어기와 진짜 친구가 되고자 했던 잭윌과 옳음과 친절 중 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선택하라는 명언을 의미심장하게 읽던 소녀 썸머. 그 모두가 함께 해낸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어기를 통해 조금씩 성장한다. 좋은 부모는 무엇인가를 고민했을 엄마와 아빠는 어기와 조금 더 대화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늘 자신은 뒷전이라 생각했던 의젓한 소녀 비아는 자신이 지나고 있는 이 시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스스로 알아간다. 어기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친절하려 했던 잭윌과 까만 곱슬머리에 까만 얼굴의 썸머는 어기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더 이 이상 하지 않는다. 친구가 되는 데는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이 이야기는 결국 한 소년이 주변을 변화시키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미국이라는 나라의 보통 사람들이 어떤 가정을 꾸리고 어떤 교육을 받는지 재미있게 보았다. 이영화 속 어기의 가족은 아침에 모두 함께 식사를 하고, 아빠와 엄마가 출근길에 어기와 비아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아이가 학교를 가면 엄마는 집에서 자신의 유예했던 꿈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논문을 쓴 다음. 모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사랑을 담아 굿 나이트을 이야기한 후 각자의 잠자리에 든다. 주말에는 야외에 나가기도 하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소파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너무 당연한 그림인 것 같은데 너무 당연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 지금 대한민국에서 과연 저런 평범한 생활이 가능한 걸까? 싶었다. 아마 내가 결혼 적령기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가정과 아이에 대한 시선이 예전과 조금 달라졌기 때문인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저렇게 평범한 생활이 힘든 것은 분명하다. 이른 출근. 과한 업무. 당연한 야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경쟁뿐인 나라에서 저런 당연한 생활은 너무나 동화 같았다. 영화 속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인격체로 자라난다. 선생님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에 정성스레 답해주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과학 실험을 해도 재미있게 지켜봐 준다. 아이들에게서 그 어떤 가능성도 빼앗지 않겠다는 교육. 그들이 다 접해보고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도록 귀 기울여 주는 교육.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서 어기도 한 사회의 일원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우리나라였다면 이런 이야기가 가능했을까? 장애가 있는 학생이 보통 학교에 진학하는 것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수학교가 생긴다고 하면 집 값 떨어진다 피켓 들고 시위하는 나라니까 말이다. 그런 학생이 반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면학분위기를 헤친다며 부모들이 항의하고 결국 그 학생은 세상으로 나올 기회조차 가지지 못할게 뻔하니까.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사회의 일원임을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나 또 똑같은 사회를 만들고, 그것이 반복되는 그런 사회에 나는 살고 있는 것 같아 착잡한 기분이 되었다. 나도 내 아이가, 혹은 내 아이의 친구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연극쟁이인 내 눈에 반가웠던 그 장면. 비아가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를 연기하는 장면 말이다. (대역이었는데 갑자기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설정은 좀 작위적이었지만) 왜 <우리 읍내>였을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우리 읍내>가 일상의 작은 부분 부분, 평범한 것들의 비범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아가 스스로가 주변인이라 느꼈던 자신의 일상이 사실은 소중하고 빛나고 있었음을. 비아가 깨달아가는 과정이 작품의 마지막 독백을 통해 잘 드러난 것 같다. 사실 그 독백이라 한다면 연기과 여학생들의 오랜 레퍼토리로 사랑받아 온 부분이라 나 말고도 반가웠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으리라. 


 영화의 마지막. 어기가 작은 영웅이 되어 강단 섰을 때. 아. 이 아이의 인생은 괜찮겠구나. 너는 참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고 있구나.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단단한 소년이 되었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펼쳐질 어기의 삶을 응원하며!



옳음과 친절 중 선택해야 할 땐 친절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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