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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미 Feb 27. 2018

[영화] 리틀 포레스트_아주심기의 시간

                                                                                                                                                        

도망친 것과 돌아온 것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울 생활은 팍팍했고. 준비하던 임용 고시엔 낙방했다. 더 인정하기 힘든 건 남자 친구는 붙었는데 나만 떨어졌다는 불편한 사실이다. 마음이 쓰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배가 고파서… 돌아왔다. 그녀는 쉼이 필요했고 자신을 올곧게 받아들여주지 않는 못된 도시 서울이 미웠다. 그래서 돌아왔다. 그리고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진짜 집에서 잘 먹고 잘 자는 나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나는 돌아온 걸까? 아니면 도망쳐 온 걸까? 혜원은 그 답을 떠올리는 게 괴로워 그저 그곳에서 밭을 가꾸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자연이 주는 위로

언젠가 하루가 멀다 하고 산책을 다니는 나에게 엄마가 한 말.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끼면 어른이 된 거야. 왜냐면 언제나 거기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은 어렸을 때는 잘 모르거든. 아. 저 나무는 몇 년 전에도 저기 있었는데 아직도 꽃을 피우네. 와 이 공원에서 내가 울다 간 나무 아래. 저 나무는 아직도 누구의 위로가 되고 있구나 싶으면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니까. 잘 생각해 봐. 세월이 지나도 제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만큼이나 큰 위로가 없거든.’


아파트로 이사 와 햇살이 환한 베란다를 갖게 되면서 블루베리 나무와 천해향나무. 살구꽃. 나무를 사 온 내게 넌 왜 그렇게 식물을 키워대냐고 묻는 친구에게 내가 한 말

‘내가 조금의 관심을 주는 것만으로, 저렇게 성실하게 잎을 키워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가 맺히는 걸 보는 게 감동적이잖아. 가끔 죽은 줄 알고 잊고 있다가 봄에 새 잎이 나는 걸 보면 그 끈질긴 계속하기에 경외심이 들 때가 있다니까. 언제나 제 몫을 누가 봐주지 않아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을 본다는 것. 그건 대단히 위로가 되는 일이거든.’


혜원도 그랬을 거다. 밭에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옥수수를 따고, 토마토를 길러내고, 고추를 심고, 감자를 심고, 사과를 따고, 잡초를 걸러내고, 모내기를 하고, 그 단순하고도 일상적인 일은 어쩌면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어떤 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오래된 집에서 사계절을 보내면서 자연이 성실히 해내고야 마는 일들을 조용히 목도하는 일상.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슨일이 있는 와중에도 아무일도 없는 듯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위로. 혜원은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네기까지의 계절들. 그리고 이별의 말도.  

마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어떤 일에 매듭을 짓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혜원은 지금껏 내가 너무 못나보여서,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까 봐, 상대방에게 미안해서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시험 붙은 거 축하해. 그리고 우리… 헤어지자.’

어쩌면 자연에서의 생활은 그런 혜원을 다독거리고 치유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불어 혜원 옆에는 볼 꼴 못 뽈 꼴 다 보며 자란 옛 친구들이 곁에 있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까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어쩌면 가족보다 가까운, 많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참 이상하게도 ‘내 인생의 사람들’은 생의 전반부에 몰려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익을 따지지 않고 허물없는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는 좀처럼 얻을 수 없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어떤 모임에서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재고, 나를 재단하기에 바쁘니까. 하지만 집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어도 괜찮으니까.


혜원의 터닝포인트라 한다면 바로 이 지점. 남자 친구에게 전화할 용기를 낸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마도 전화를 하기 전과 전화를 한 후의 혜원은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그녀는 앞으로 한발짝 내디딘 것이다.  


그곳에는 혜원의 삶도 있었지만 엄마의 삶도 있었다. 

‘집’에는 없지만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혜원의 엄마다. 혜원은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고3 수능이 끝난 어느 날. 어떤 예고도 없이 집을 떠난 후. 한 번도 혜원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혜원은 엄마가 집안 구석에 숨겨놓고 간 편지를 발견하지만 외면한다. 그리고 가끔 엄마로부터 마치 생존 신고하듯 시골집으로 오는 편지 또한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혜원이 좋아해서 어른이 되면 가르쳐 준다던 ‘감자 빵’의 레시피가 담겨있다. 가끔 보내는 편지에 내용은 없고 레시피라니…  


하지만 혜원은 이 집에 있는 동안 자신이 모르던 엄마의 외로움을 본다. 혜원이 어렸을 때 아빠의 투병생활을 이어나갔던 이 곳. 남편을 보내야만 했던 이 아픔 가득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 혜원을 키워낸 엄마. 혜원은 세상에 한번 무너지고 나서야, 이곳에서의 지독한 외로움을 마주하고 나서야 엄마의 삶을 읽어낸다. 엄마가 혼자 울었을 부엌. 잠든 혜원을 옆에 두고 멍하게 몇 번이고 바라보았을 시골의 맑은 밤하늘. 어쩌면 슬픔을 이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꾸었을지도 모르는 마당의 텃밭. 그런 자신의 슬픔을 들키고 싶지 않아 혜원에게 맛있는 것들을 만들어주던 소담한 식탁.


혜원은 생각한다. 그래, 엄마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고, 지금의 이 부재가 엄마의 유예되었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고, 이제는 엄마가 조금 이해가 가노라고.  


나만의 감자 빵 레시피. 그리고 아주심기의 시간

그녀는 결국 재하의 말처럼 엄마의 감자 빵 레시피가 아닌 자신만의 레시피를 찾았을 것이다. 그녀는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다시 서울로 떠난다. 도망이 아닌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혜원은 어쩌면 지금 아주심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파는 초겨울 씨를 뿌리고 겨울을 견뎌 그 싹을 키워 수학한 뒤. 다시 터를 잡을 곳에 심는다. 그래야 더 달고 아삭한 양파가 된다고.


혜원의 겨울은 곧 끝날 것이고, 그녀의 아주심기 시간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억 속 엄마는 가끔 함께 숲에 가서 모습을 감추곤 했다고 한다. 그때는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였던 혜원이 이제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이 곳에서의 사계절을 통해 많은 것을 잃고, 버리고, 또 치유받았고 얻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그녀의 인생은 아마도 꽤 괜찮을 거다. 그리고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땐 잠시 돌아와도 좋다. 집으로…


 개인적으로는 싱그러운 자연으로 가득 찬 스크린 안에 한참 싱그러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배우들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덩달아 파래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자란 부산의 외각 마을과 내 아버지의 고향 경남 함안군의 풍경들이 떠올랐다. 엄마랑 쑥을 캤던 기억. 모내기를 하다 거머리에 물렸던 기억. 새참을 먹었던 시원한 나무 그늘. 친구 집 복숭아 밭에 놀러 가 젓가락으로 잡았던 송충이들. 지금은 펜션이 되어버린 할아버지 댁에 있던 아궁이며 가마솥. 장독들. 퐁당 변소. 감나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어린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어느 한 시절의 나였을지도 모르는 혜원의 사계절을 보았다. 행복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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