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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Nov 29. 2020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다.

인생이 기브 앤 테이크라면 얼마나 깔끔할까요?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줄 수 있다면 계산이 참 깔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이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친구와 만나면 흔히 '내가 밥 살게. 네가 커피 사.'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그것으로 깔끔하게 거래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다른 계산이 숨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밥 사고 네가 커피 샀으니, 다음에는 네가 밥 사고 내가 커피 사는 거야.'

이렇게 암묵적으로 약속을 합니다. 한 번 밥 사고 커피 사는 것으로는 거래가 끝나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가 내어 주는 만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받은 만큼 꼭 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면 다음에 내가 커피 한 잔을 사 주는 게 기브 앤 테이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커피값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받은 만큼 뱉어내야 속이 편합니다. 내가 얻어먹기만 하면 계속 빚지는 느낌이 들지요. 그래서 어떻게든 내가 받은 것을 보상해야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부채감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뭐라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서 거저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수히 받아 왔습니다. 내 손으로 처음부터 일구어 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 한 벌조차 내가 받은 것입니다. 내 옷을 내 돈 주고 샀으니 그건 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 옷의 속성을 바라봅시다. 


그 옷을 가만히 바라봅시다.

옷의 모양새가 있고 색감이 있습니다. 먼저 그 옷을 내가 디자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군요. 그렇다면 옷의 색감은 어떤가요? 상품으로써 이 옷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고른 것은 맞지만 내가 그 옷에 그 색깔을 입히지는 않았습니다. 옷의 끝 부분이나 소매의 마감처리도 내가 하지 않았지요. 나는 이 옷에 대해서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을 이 옷과 바꾸었을 뿐입니다. 


내가 직접 옷을 재단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이 아닙니다. 실 한 가닥조차 내가 뽑아낸 것이 아니니까요. 설사 실을 내가 직접 뽑았다고 해도 그 실은 어디서 온 것인가요? 자연입니다. 실 한 가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태양과 바람과 온갖 동식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자연이 없었다면 실 한 가닥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곰곰이 따져보면 내 인생에는 온통 받은 것뿐입니다.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게 채워져 있습니다. 기브 앤 테이크도 아닌 테이크의 연속입니다. 


내 인생이 온통 받은 것들이라면 우리가 실제로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만큼은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내 것이라서 정말로 내가 주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이 몸도 부모님의 정자와 난자로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아주 깊게 따져 보았을 때 내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없다니요. 


사실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사람은 어릴 때 너무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받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통째로 거저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들 받은 것들을 다시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받을 수밖에 없던 인간이라는 존재는 받은 것을 갚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받았던 것을 다시 돌려주고 또다시 받고 또다시 돌려주고. 이 행위의 연속이 기브 앤 테이크의 보이지 않았던 진실입니다. 


이처럼 받음으로써 이 삶이 이루어졌습니다. 언젠가 선물처럼 이 삶이 주어졌습니다. 태어난 후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을 거저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 삶 속에서 선물처럼 받은 것들을 내 것인 양 착각해서 내가 주는 것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부분은 없을까요? 내가 단지 숨 쉬고 존재하기 위해서만이라도 받은 것이 참 많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나는 받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이왕 끊임없이 받는 거 기쁘게 받기로 선택합니다. 어차피 받을 수밖에 없는 거 갚아야 한다는 부채의식 없이 기쁘게 받기로 합니다. 빚지는 느낌 없이 받으니 내가 받은 모든 것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이렇게나 많이 그냥 받다니! 온 세상이 내 존재를 축복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과한 걸까요? 이 축복 속에서 다시 기쁘게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기쁘게 주니 내가 먼저 기쁨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주는 사람일까요, 받는 사람일까요? 


테이크도 기쁘게, 기브도 기쁘게.

아무 밑천 없이 받아 온 인생, 돌아보면 손해 볼 게 없는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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