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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Nov 30. 2020

브런치 광탈, 에세이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

브런치를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이렇게 많이 작가 신청에서 떨어질 줄은 몰랐다. 

작가들처럼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나 나 스스로 쓴 글에 만족하는 사람으로서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합격하는 거야 별일이 아닌 줄 알았다. (굳이 탓하자면 주위에서도 글 좀 쓰는 거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진심으로 브런치 합격은 그냥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 죄송하다는 브런치의 입장을 들었을 때,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시스템 오류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정을 해서 다시 지원을 했다. 또 떨어졌다. 당연히 심사용 글도 더 무게감 있는 걸로 바꿨는데도 떨어졌다. 두 번째 탈락 이후 조금 기분이 상했다. 이게 뭐라고 떨어진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그 후에도 그럴 리가 없는 일이 여러 번 이어졌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계속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탈락 소식을 들을 때마다 더욱 진지한 글들을 심사용으로 넣고 자기소개와 활동 계획도 더 구체적으로 썼는데도 브런치는 죄송하다고만 했다. 우리는 계속 서로 죄송한 사이로 남아야 하는 걸까.


브런치가 할 줄 아는 언어가 죄송하다는 말뿐이 아닐까.

브런치 AI의 언어 습득 능력이 형편없군.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할 수 없었다. 


연이은 브런치 광탈.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인생을 조금 살았다고 이쯤 되면 세상 탓하지 말고 나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았는데 씁쓸했다. 탈락의 이유를 정확히 찾을 수 없었다. 금세 합격했다며 발행한 글들을 읽어보니 나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었다. 오타가 군데군데 눈에 띄는 글들을 보면서 그들이 왜 합격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왜 불합격한 것일까. 


브런치는 오타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렇게 막 쓴 글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들처럼 막 쓰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무게감이나 진지함 따위는 필요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쓰자. 막말을 쓰자는 심정으로 키보드를 연타했다. 그리고 퇴고를 하기는 했지만 다른 글들처럼 '진지하게' 꼼꼼히 수정하지는 않았다.


거침없이 브런치 작가 신청을 다시 눌렀다. 몇 번이나 떨어졌는지 세는 것도 피곤해졌을 그즈음에 합격 소식이 들렸다. 정말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약간 기분 좋긴 했겠지만) 허탈한 마음에 쓴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써서 합격했단 말인가! 


이번에 합격하지 않으면 그냥 관두려고 했는데 브런치는 어떻게 알고 합격을 시켰다. 

브런치 AI 심보가 아주 고약하다. 

생각보다 지능이 높은 고단수 AI 같다.


브런치는 공들여 쓴 글을 좋아하지 않나 보다. 

모니터에 대고 혼잣말하듯이 지껄인 글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합격을 하고 보니 딜레마에 빠졌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브런치의 광탈과 밀당을 겪으며 배운 점이 하나 있다.

에세이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다.

한 글자가 빠졌다. 


'내' 에세이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 


SNS에서는 진짜 나를 숨기고 그럴듯한 나를 보이면 사람들이 열광한다. 

브런치 너마저 그런 거니?


'브로콜리 너마저'를 따라하고 싶은데 브런치와 브로콜리는 약간 거리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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