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마음 내려놓기, 자기 대신 인연심리학

by 나무둘

[1분 인생 힌트] 공허한 마음 내려놓기, 자기 대신 인연심리학


주체성을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나'가 굉장히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지금처럼 '나'가 부각된 시대는 없지 않았을까요? 신에게서 독립한 인간이 드디어 나의 소유를 마음껏 부르짖는 시대. 그런데 희한하게도 공허한 사람은 더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공허함은 이 시대를 규정하는 또 다른 키워드입니다. '나'를 아끼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세상에 공허한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또 내 가슴이 공허해지는 순간은 왜 아무 뜬금없이 찾아와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게 하는지. 마치 공허함은 '나'에 반비례하는 듯 합니다.


내가 공허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현대인의 만성 질병 같은 공허한 마음을 치유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초도 늦거나 빠르지 않은 완벽한 인연


우리는 엄청나게 분리되어 있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블로그니 SNS가 이렇게 활발한 이유도 우리가 분리되어 있다는 반증입니다. 분리되어 있지 않으면 연결되려 이런 몸부림이 필요하지는 않겠지요. 블로그와 SNS에 글이 많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우리는 진실한 인간의 만남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심리학에서 자기를 강조한지도 반세기가 지나갑니다. 자기를 획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처럼 여기지고 자기를 온전히 소유하는 것은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였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아무리 좋게 돌아가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내가 몹시 아픈 뒤에 세계 평화가 온들 무슨 상관이 있다고 느끼겠어요.


아뿔싸.

우리는 매우 논리적으로 들리는 이 생각의 흐름에 방금 일격을 당한 것입니다. 내가 있으니 세상이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면서도 동시에 진실을 반토막내서 한 쪽면만 쳐다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과 타인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있나요?



내가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생존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내일 당장 택배가 전혀 오지 않는다면 어떻겠어요? 내 주위의 마트가 다 문을 닫아 버린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인은 몇 없을 것입니다. 완전히 혼자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말만 그럴싸한 환상입니다. 심지어 몇날 며칠을 고립되어 지내기만 해도 우리는 심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느끼게 됩니다.


이성을 쟁취하고 신에게서 나의 독점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느라 우리는 한 쪽면을 간과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주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장 옆에 사람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옥시토신의 분비량이 변한다고 하는데 어찌 나의 심리적 건강을 나 혼자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심리학은 이제 스스로 인연심리학에게 자리를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은 인연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먹은 음식을 생각해보세요. 엄청나게 많은 하늘, 땅, 바다의 온갖 음식을 먹어가며 이 몸을 생존시켰습니다. 내 몸의 주인은 하늘과 땅과 바다의 그 모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그때 내가 먹은 생물이 음식이 되기까지 수고한 모든 사람들의 인연도 이 몸에 함께 묻어 있습니다. 생물을 수확하고 포획한 사람과 생물을 죽인 사람과 운반한 사람과 운반 장비를 만든 사람이 함께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운반 장비를 만든 기계를 만든 사람도 있고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이 그 일을 힘내서 하기 위해서 먹은 음식도 있습니다. 내가 먹은 음식 하나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몸이 곧 세상의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의 존재는
셀 수 없는 존재의 인연이다.


사람과의 만남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생각, 어떤 감정, 어떤 가치관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만났나요? 어떤 책이나 강의를 듣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생각과 감정이 일어났을 수 있지요. 그리고 그 책이 쓰이고 강의가 열리기까지, 어떤 사람을 만나기까지에도 수많은 인연이 얽혀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만났습니다. 여기에서 이 고리의 어느 하나만이라도 어긋났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1분 1초도 어긋나지 않게 완벽하게 연결되어 내 밥상에 음식이 오르고 내가 그 생각을 접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계속 확장시키면 온 세상이 말 그대로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이 된다고 하듯이. 사람의 만남, 내가 겪은 모든 사건 사고는 아주 작은 것부터 원인과 결과의 맞물림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이 나일 때
공허함이 어디 있나요?



자기를 획득하고 소유하고 주장하느라 현대인은 오히려 소외되고 공허해졌습니다. 문명의 발달상에 필요했던 과정이라면 이제 그만 그 발달과정을 넘어서도 되지 않을가요? 한 쪽으로 치우치면 자연은 자연스럽게 보상을 요구합니다. 나에게 치우친 사고방식과 감정이 소외감과 공허감을 유발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자유의지를 극대화하는 경향을 멈추고 바라 봅니다. 내가 타인과 세상과 공존하는 존재라고 느끼는지 확인해 봅니다. 내 존재에 세상 만물이 기여하고 있으며 그 덕에 내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스로 질문해 봅니다. 나를 소유하고 주장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 그럼에도 만물의 하나로 살아가는 나를 느낄 때 공허함이 어떻게 변하는지 스스로 확인해 봅니다. 모든 것이 인연이며 인연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공허함을 치유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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