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없다. 삶이 있을 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수도 없이 들어본 질문이고 스스로도 수도 없이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물어보고 뭔가 대답을 해야 했지요. 누가 물어보지 않더라도 내가 무엇이 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노력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흔히는 선생님, 경찰관, 소방관, 의사, 변호사, 대통령, 유튜버, 연예인 등 직업을 가지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직업을 의미합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도 직업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흔하지요.
또는 착한 사람,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동안 우리는 선하면서도 부자인 사람을 동경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벽해 보이는 그들을 좇아갑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나의 이상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
문득 궁금하지 않습니까?
나는 왜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그냥 살면 왜 안 되는지 말입니다.
오랫동안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어차피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 애시당초 그 요구에 내가 응할지 응하지 않을지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뭐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사나 싶기도 합니다. 그냥 사회에서 요구하는 걸 맞추고 살면 부와 명예도 따라올 텐데 말입니다. 부와 명예라고 하니까 대단한 걸 추구할 때만 부와 명예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부와 명예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돈 좀 더 벌고 싶고, 사람들에게 내가 더 알려지고 존경 받고 싶은 마음이 부와 명예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부와 명예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 사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반대로도 생각해 봅니다. 부자는 적고 부자가 아닌 사람은 더 많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부자에 적합한 사고방식은 사회에 적합한 사고방식입니다. 이 사회에서 유능하게 생존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부자들은 갖추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인간이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부자의 사고방식이 원초적으로 인간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걸 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과학의 평균 개념에 입각해 생각해보면 소수의 부자들이 비정상이고 대다수의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정상에 속합니다. 참 괴상한 생각이지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우리는 부자가 되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듯 아무 여과기 없이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언제까지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아무 의심이 없는 이 생각에는 의심이 없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생각해야 할까요? 엉뚱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업은 꼭 더 잘 되어야 하는 것이며 돈은 나날이 더 많이 벌려야 하는 것일까요? 자기는 계속해서 계발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등등.
상당히 불건전하고 비건설적인 이 사고방식은 의외의 자유로움을 낳습니다. 내 삶에 부과된 것들을 지워보는 상상을 해 봅니다. 특히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파문을 일으켜 봅니다. 부자가 되어야 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타인에게 사랑 받아야 하고... 끝이 없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지금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발전, 성장, 계발이라고 명명하며 의심의 여지 없이 따릅니다. 혹은 페르소나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가며 애써 가면 위에 가면을 더 쓰며 나를 제쳐 둡니다.
맙소사.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스스로 숨을 막으렵니까?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입니다. 어느 날은 한없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다가 어느 날은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스스로 수인됩니다. 생각은 나를 자유롭게도 하고 옥죄기도 합니다. 내가 스스로 수인이 되기로 자청한 날이면 내 마음은 한없이 좁아집니다. 그리고는 나를 왜 이 곳에 가두었느냐고 소리치고 내가 수인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악을 씁니다. 저런. 환상도 환상도 이런 환상이. 정말 환상적입니다. 아무도 감옥에 갇히라고 안 했는데 말이지요.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할 때 이런 일이 생깁니다. 지금의 내가 아닐 때 나는 즉각 쇠고랑을 차게 됩니다.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이 몸을 이끌고 산다는 게 천근만근 무겁기만 합니다. 이 생각 하나로 오늘의 기분은 끝장이 난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인생이 낭떠러지 위에서 겨우 버티고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환상 같으니라고.
감옥에 갇히지 않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일이 또 없습니다. 그저 어떤 사람도 되려고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것으로 즉각 감옥살이가 끝납니다. 쇠고랑도 사라지고 감옥도 사라지고 천근만근의 무게도 사라집니다. 새 생명을 얻기라도 한 듯 '나'가 생기가 돋고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어떤 사람도 되지 않고
그냥 살기
살지만 사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 아시나요?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할 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사하고 사실 사람도 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지금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인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이 아닌 채로 살아야 그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고 사람이라면 사람인 채로 살아야 그에게 가장 적합하겠지요. 어떤 사람도 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앞서 말했듯 어떤 사람이 되려다가는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 감옥으로 들어가는 격입니다. 사람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미 사람이니까요. 이미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지점에서 굳이 다시 시작할 이유는 없습니다.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지금의 나로 살 때는 '어떤'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둘 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삶만 남습니다.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사는 게 무엇인지 말할 수 있습니다. 살지도 않고 있으면서 어떤 사람이 옳고 어떤 페르소나 가면이 더 멋있는지 고심하고 떠들고 있으면 삶은 누가 삽니까? 예전에 개그 프로에서 소는 누가 키우냐고 그랬지요. 아무리 좋고 멋지고 환상적이라 해도 그것이 가면이면 무슨 소용입니까? 온갖 좋은 것을 다 누릴 수 있으니 대신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고 하면 다들 도망갈 겁니다. 나는 어떤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삶을 살 때는 어떤 사람도 없습니다.
충일하게 삶의 흐름과 함께 할 때 사람은 사라집니다. '어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삶에는 페르소나도 가면도 다른 어떤 것도 발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삶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