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강의를 듣다가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음 그러니까 기존에 있던 것에서 저것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 거네. 이런 거는 저런 거에서 차용해서 접목한 거네. 그 부분만 약간 다르게 적용하는 거구나. ' 생각의 결론은
별반 다를 게 없잖아.
이 심리학이나 저 심리학이나 인류사에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밥 먹으면 똥을 누어야만 하는 인간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평생 사랑을 원하지 미움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시각을 적용해 약간 다르게 보았을 뿐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처음에는 새로워 보일지 몰라도.
그런데 그런 걸 나는 왜 계속 찾아 듣고 있지?
흠. 심리학의 은밀한 유혹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심리학의 은밀한 유혹이라고 썼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학이 은밀하게 유혹하는 게 아니라 내가 대놓고 끌리는 것입니다. 심리학이 성행한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이 심리학에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대관절 그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심리학이 무엇인지 따지다 보면 또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 쉽습니다.
질문이 잘못되면 아무리 바른 답을 구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심리학이 유혹한 것이 아니라 내가 유혹당한 것입니다. 유혹 당하는 마음. 거기에는 유혹을 당할 수밖에 없는 취약성이 있습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흔들리는 것이 깃발도 아니요, 바람도 아니요,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나요? 아마도 나에게 없다고 생각한 것을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에게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을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류의 오랜 환상. '부족한 것을 채우면 완전해지리라~' 도그마도 이런 도그마가 없습니다. 우리를 평생 호도하는 것은 '실제 결핍'이 아니라 결핍되었다는 우리의 착각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구하고 있을 때 나의 결핍을 내가 인가합니다. 있지도 않았던 결핍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실체도 없던 결핍이 진실이 되고 맙니다. 아뿔싸.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동냥 그릇이 황금으로 된 줄도 모르고 동냥을 하러 다닌다고. 내 계좌에 잔고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줄도 모르고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나에게 계좌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 버리고 새로 발급하기에 급급합니다.
무엇을 찾고 구하든 우리는 찾지도 못할 것이고 구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 구하고 찾으면 얻을 것이라는 말은 밖에서 구하고 찾지 않고 안에서 구하고 찾으면 즉각 얻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나에게 있는 것을 구하고 찾을 때는 별다른 노력도 들지 않습니다. 그냥 내 계좌를 열어보고 흐뭇해 하듯이 그냥 내 안을 보고 내면이 풍요롭다는 것을 알면 그만입니다.
심리학과 자기계발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합니다. '역시 ㅇㅇ 선생님이 최고야. 난 완전히 그 ㅇㅇ선생님 팬이라니까.' 그리고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강사와 교수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섭렵하고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 하려는 팬이 됩니다. 주체적으로 살라고 했거늘 그 사람을 모방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정신을 새롭게 하라고 했더니 정신을 새롭게 포맷해서 그 사람 스타일로 중무장하려고 합니다.
어디 가십니까?
정신 님.
정신 차리라 마! 자다가 봉창처럼 화들짝, 친구의 사투리가 들립니다. 연이어 심리학 강의를 듣고 자기를 계발하는 건 훤히 뚫린 대로를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인생을 자기 맘대로 살고 있는 지인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자기계발서는 안 봐. 자기 계발은 자기가 하는 거지 무슨.' 흠.
심리학 책을 열심히 보고 심리학 강의를 열심히 듣는 동안 나는 내 팬은커녕 내 편이 된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안이 문제투성이라는 것을 매번 확인할 뿐입니다. 세상에나, 정신장애 진단명마다 내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메시지가 상처난 마음에 연고로 등장합니다. 현혹되기 십상인 달콤한 그 말! 있는 그대로 자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 아주 지당하신 이 말씀, 세월이 지나고 나면 깨닫습니다. 그 메시지는 아니 '메시지'는 필요 없었다. 그 또한 또 다른 유혹거리라면. 나의 취약한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라면.
헛헛. 어느 날,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대놓고 유혹 당하는 마음에게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남 편, 남 팬은 그만하자.
내 편, 내 팬이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