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라는 적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때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네!
살아있습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불안과 두려움이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어찌 할 수 없다는 분명한 느낌이 찾아올 때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아무것도 통제되지 않는 듯한 느낌. 너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희롱하며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실로 그렇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나의 삶을 잠식하면서 그 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그 때 또다시 알게 됩니다.
너도 살아있구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것.
불안과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심해 봅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면 화들짝 놀랍니다. 어떻게 아직도 이런 게 두려울 수가 있지? 여전히 이런 것에 불안하단 말인가? 잘못하면 자책의 수렁에 빠지기 쉽습니다. 여전히 아직도 극복해내지 못한 해묵은 불안과 두려움에 내 존재가 작게 느껴집니다.
그럴 때면 영성 서적에서 흔히 말하듯이 에고가 떠오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에고의 존재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나는 극복하지 못했다. 여전히 에고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다.' 아 님이여. 언제까지 나는 에고의 그늘에 살아야 하는 것인가요?
에고의 존재를 상정하고 나면 불안과 두려움은 싸워 없애야만 하는 가장 적대적인 적이 됩니다. 반드시 무찔러야 하는 적. 내 존재의 가장 반대편에 서서 나를 못 살게 구는 적.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하며 내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악랄한 적. 내 인생의 가장 확실한 적입니다. 그래서 나는 온힘을 다해서 에고라는 적을 없애고 싶어 합니다.
아 님이여. 나는 잘 익은 단풍나무 숲을 두고 청명한 하늘빛 깨뜨리는 산새소리에 홀려 가장 으슥한 외길로 이끌립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 길은 불안과 두려움이 이끄는 길. 나를 파멸로 이끌지도 모르는 길입니다. 아무리 들어가 보아도 끝이 없고 아무리 헤매어 봐도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길입니다. 내가 에고라는 적을 상대하는 순간 내가 빠지게 되는 길입니다.
순간 나는 기억합니다.
오래된 현자가 외길에 빠지거든 꼭 기억하라고 했던 그 말을 기억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 싸우지 말라.
아차. 나는 에고가 허상임을 자각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더 불안해지고 두려움에 떨게 됨을 이미 수차례 체험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지독히도 떨쳐 버리고 싶은 그 감각.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에서 이겨 보려고 아둥바둥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몸서리칩니다. 또 다시 그 미로에 들어서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에고와 싸울 수 없습니다. 에고는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이자 곧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자도 나요, 불안과 두려움을 만들어 낸 자도 나요,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려는 자도 나입니다. 상황은 주어졌을 뿐. 나는 불안과 두려움의 소유자가 나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모든 심리적 무기를 포기합니다. 저항과 방어를 통째로 내려놓습니다. 싸울 수 없는 적에게는 항복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싸우자마자 패배하는 전쟁을 내가 다시 시작할 이유는 없습니다. 괜히 상대의 성을 돋구어서 내 진을 다 뺄 이유도 없습니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릎을 꿇습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게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삶은 참 묘합니다. 악 쓰고 용 쓸 때에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가로막는 것 같다가도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자세를 취하자 성수를 부어 줍니다. 축복의 세례. 나는 지는 자세를 취하고 삶에게 그토록 얻고 싶었던 것을 얻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나는 모르겠다며 자세를 낮추자, 불안과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고 시인하자마자 나에게는 새 생명이 주어집니다. 소생. 불안과 두려움이 물러나며 새로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내가 에고라 칭했던 것은 에고의 가면을 벗고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공포에 질리게 했던 것은
내가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야.
네 안에 이미 있던 공포가
스스로를 드러낸 것뿐이야.
나는 더욱 머리를 깊숙하게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의 공포가 불안과 두려움을 초청한 것이라. 반문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있던 마음의 조각이 불안과 두려움에 반사되어 나타난 것이라. 실로 그렇습니다. 나는 힘을 빼고 내 안을 조용히 응시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탐조등처럼 내면의 길을 밝혀주는 스승도 되어 줍니다. 그 불빛을 따라서 나는 내면을 더욱 분명하게 바라봅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축복의 빛이 내가 지어낸 환상을 깨부숩니다.
외부의 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내부의 적 역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