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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6. 2022

마음의 상처 안 받는 법

노자, 물처럼 겸허하게 무위자연

[1분 인생 힌트] 마음의 상처 안 받는 법 (노자, 물처럼 겸허하게 무위자연)


아아!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탄식부터 나옵니다. 내가 꿈꾸는 그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나의 님이 사는 곳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은 님은 내 마음을 온통 빼앗아 버립니다. 사는 데 정신 팔려서 잊고 살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사무치게 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현실의 다양한 잽에 연타를 맞고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면 더욱 그리워집니다. 일상에 찌들어 돈을 버는 기능에 집중하며 살아가다가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는 님. 또 다시 현실 속에서 외면하고 살다가 가슴이 팍팍해지면 눈물과 한숨 지으며 회향하고 싶어지는 그곳. 


이 이야기는 내 마음이 언제나 그리워하는 그곳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음의 상처 안 받는 법(노자, 물처럼 겸허하게 무위자연)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삶이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 아닌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은 마음에 남은 수많은 상처 덕분이었습니다. 덕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살고 싶었던 삶이 지금의 삶보다 나았으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언제나 지금의 삶이 최선의 삶이라는 것을 견지하고자 함입니다. 


수많은 상처를 받고 또 주면서 마음의 상처에는 손쓸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은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상처 받은 마음은 치유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마하라지의 개념을 잠시 빌려 옵니다. 새의 관점에서 보면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요, 개미의 관점에서 보면 상처가 너무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새와 개미의 중간에 사는 인간은 상처를 안고 딛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살아가다 보면 치유되지 않던 것도 자연스레 희미해집니다. 


상담심리는 배우기 전에, 어쩌면 인생을 배우기 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자연입니다. 사무치게 그리워지고 보고 또 보아도 또 보고 싶은 것은 자연입니다. 자연은 행함이 없습니다. 무위자연. 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을 획득(?)합니다. 노자를 처음 만났던 느낌을 설명하자면 향엄격죽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향엄격죽이라는 말은 기왓장에 대나무가 부딪치는 소리에 똘똘 뭉쳤던 의문이 사라지고 홀연히 깨닫게 되었다는 선불교의 일화에서 나왔지요. 사랑에 빠지면 그 즉시 아무 증거도 없이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짙은 밤에 환한 보름달 뜨듯이 노자를 알아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들 만들 그 기쁨과는 무관하게 일상은 이어졌지요. 노자를 만나 마음이 환히 밝아졌던 것도 무색하게 일상에 찌들고 화내고 억울해하고 원망하고 울었다가 웃었다가 미친 듯 불어대는 마음의 바람에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살아 왔고 살고 있습니다. 아 님이여. 삶에 여러 생채기가 나면서 마음의 상처를 안 받는 법은 정녕 없는 것인지 고민했지만 노자처럼 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노자를 알아보고 기뻐했던 순간이 망령은 아니었을까. 산다는 건 그냥 원래 이렇게 메마르고 둔탁한 게 아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다시 만난 것은 노자의 무위자연입니다. 무위자연. 처음 들었을 때부터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말은 지금도 입 안에서 굴려 보면 감미로운 느낌을 자아 냅니다. 내 멋대로 잡스럽게 해석하면 이런 말로 들립니다.  



아무것도 안하면 자연스러워져.
뭐하려고 하지마. 자연스럽게 둬.
아무것도 안 해도 되. 오히려 절로 된다니까.  



마음의 상처가 받고 싶지 않아서 마음의 상처를 안 받는 법 따위를 궁리할 때 나는 무위자연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교정하고 바로 세우고 치유하려고 할 때 나는 무위자연의 시원하고 탁 트인 마음에서 벗어납니다.   


노자가 도를 즐겨 비유했던 물. 물은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기 마련입니다. 물은 어떤 장애물을 만나도 맞서 싸우지 않고 흐릅니다. 바위를 만나면 비켜 흐를 줄 알고 가로막히면 막힌 대로 머물 줄도 압니다. 어느 그릇에 담기든 그 모양을 바꿔가며 현재 벌어지는 일에 순응합니다. 무위자연의 최고봉을 달리는 물이지요. 그래서 상선약수,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다고 했나 봅니다.  


물을 본받고 무위자연을 따라해 봅니다. 희한한 점은 마음의 상처를 안 받는 법 따위는 없다고 인정하면 현실을 살기가 편해진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가르치며 아예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며 진리의 머릿말로 삼았습니다. 숨을 쉬며 따라가는 동안 고통은 불가결 우리를 따라 붙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안 받겠다는 것은 어쩌면 물더러 하류에서 상류로 가라고 지시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안 받는 법을 찾지 않을 때 마음은 물처럼 흐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상처가 머물지 않고 떠내려 갑니다.  


처음에 상처를 받았던 이유는, 지금도 상처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내가 머리를 쳐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리를 높게 들고 다니니 어떤 문을 통과해도 부딪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자가 말했듯 물처럼 겸허하게 아래로 흐를 줄 모르는 마음은 어디를 가도 부딪쳐 멍이 들기 쉬웠던 것입니다. 내가 상처 받았다고 씩씩거리며 턱을 들고 다니는 동안, 내가 상처 받아서는 안 된다고 우기는 동안, 그건 내 탓이 아니라 그 사람 잘못이라고 호소하는 동안 나는 인생이 원래 고통의 바다라는 진리를 무시한 대가로 더 많이 상처를 받았던 것입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래를 향하며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고 무위했더라면 더 많은 상처는 받지 않았을 테지요.    


마음은 원래 상처 받기 쉬운 물건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원래 상처가 생기기 쉬운 곳입니다. 무위자연, 상선약수. 되고 있는 것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다. 흐르는 대로 흐르면 최상의 좋음에 이른다. 되는 대로 살고 상처 받지 말라. 상처가 생기기 전에 먼저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라. 마음의 상처가 있거든 진리를 기억하라. 모든 것이 스스로 그러하게 될지니.  


노자, 그리운 그 이름을 불러 보며 노자가 산 시원하고 유쾌한 세상에 나도 살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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