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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6. 2022

허무한 마음 다루는 2가지 방법

[1분 인생 힌트] 허무한 마음 다루는 2가지 방법


마음이 허무할 때가 있지요. 출근은 왜 하는지 아침에 왜 일어나는지도 모르겠고 만사가 다 귀찮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밥은 왜 하고 있고, 왜 해 먹이고 있고, 왜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경사스러운 일 뒤에 이런 허무한 마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났고 일도 잘 풀렸는데 그 다음에 갑자기 기분이 저하되지요. 그러면 이유도 알 수 없고 현실과도 맞지 않는 마음 상태에 괜히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마음은 도대체 왜 이리 제멋대로인 걸까요? 

허무한 마음이 들 때 평온을 되찾는 방법 2가지를 이야기해봅니다. 



허무한 마음과 거리두기&춤추기


먼저 씁쓸하지만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인생은 원래 약간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인간이기에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우리는 허무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무하기 때문에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요, 의미를 찾기 때문에 더욱 허무해지게 됩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대뇌피질이 지나치게 발달된 업보입니다. 우리는 뇌의 발달로 인해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게 만든 뇌의 능력은 그만큼이나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역설적이지요. 인생살이를 편하게 만들려는 뇌의 작용이 오히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니 말이지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굴레는 갖고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의미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발휘한다는 뜻이고 그와 동시에 허무해지기 쉽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허무함을 약간은 인생의 동반자나 친구처럼 볼 수 있습니다. 싸워서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내 몸에 늘 붙어 있는 것이지요. 싸울 필요가 없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면 조금은 허무함의 농도가 옅어지겠지요. 때가 되면 잘라내는 손발톱처럼 허무함도 필요한 만큼 가지고 살면서 농도가 너무 진해졌을 때 적당히 다루면 됩니다. (갑자기 생각난 '손발톱 자르기' 비유인데 꽤 마음에 듭니다 호호) 


이제 너무 길어진 손발톱처럼 넘치는 허무한 마음을 다루는 방법 2가지를 함께 고민해 볼까요? 이제 이야기할 2가지 방법도 이 블로그를 꾸준히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꽤 익숙하게 느껴질 접근법입니다. 


첫 번째는 거리두기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거리두기가 유행하기 전부터 자기와도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했었는데요. 여기서의 거리두기는 허무함과의 거리두기입니다.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신작용은 내가 아니지요. 생각도 감정도 충동도 욕구도 내가 아닙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대상물인 그것들이 나는 아닙니다. 내가 거리를 충분히 두게 되면 그것이 더욱 확연히 느껴집니다. 



나는 저 높고 푸른 산이요, 
허무함, 너는 일개 바람이다. 



내가 주인이고 그것들이 종인 상태가 될 때까지 충분히 거리를 벌려두고 가만히 응시하는 것입니다. 허무한 마음에 먹이를 줘서 키우지 말고 멀리 떨어져서 허무한 마음을 관조하는 나의 상태로 머뭅니다. 그러면 허무함의 영향력이 약해지겠지요. 태풍의 영향권을 벗어나듯이 허무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있어 봅니다. 허무함과 거리두기를 계속 하다가 보면 점차 무게의 중심이 나에게 실리는 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산처럼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게 되면 허무함이 점차 작게 느껴집니다. 나의 기세가 커지는 만큼 허무함의 위력도 약하게 느껴지지요. 관건은 거리를 둔 채 조금 끈질기게 주인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춤추기입니다. 춤을 출 때는 상대방의 호흡과 몸짓을 잘 따라가야 하지요. 상대방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스텝에 맞추어서 내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함께 넘어질 것입니다. 허무함이라는 상대와 함께 춤을 추는 방법은 허무함이 움직이는 방향, 거리, 세기에 내가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으면 몸이 편안합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가령 아이들의 옷을 성인인 내가 억지로 입으려고 하면 옷이 찢어질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입었다고 하더라도 아주 불편하겠지요. 



나는 허무한 마음과
가장 잘 맞는 댄스 파트너다.



그래서 허무한 마음과 스텝을 꼭 맞추는 것입니다. 허무함에 저항하지 말고 허무함이 움직이려고 하는 대로 내가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허무함과 합을 맞춰 몸도 마음도 움직이다 보면 에너지가 해소되면서 언뜻 상쾌함이 찾아 옵니다. 정도에 따라서 마음만 따라가도 되고 실제로 몸을 가볍게 털거나 움직여도 됩니다. 휩쓸려서 충동적으로 이런저런 행위를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와 호흡을 잘 맞추는 파트너에게 악심을 품는 경우는 없겠지요. 내가 허무함을 존중하면서 허무함의 에너지를 따라 적당히 움직여주면 허무함도 우리에게 맞추기 시작합니다. 허무한 에너지를 덜 내뿜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점차 허무함과도 편안해집니다. 나를 허무하게 만들지 않는 허무험을 경험하면 마음이 허무하지 않습니다. 관건은 허무함에 마음을 열고 그 움직임에 따라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무한 마음을 다루는 데에는 복잡한 듯 보이지만 실은 간단한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더 입맛에 맞는지요? 입맛대로 골라 하시면 됩니다. 좀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서 연습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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