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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6. 2022

불멍 블로그멍 스마트폰멍

불꽃 말고 숯불처럼 살자

[1분 인생 힌트] 불멍 블로그멍 스마트폰멍(불꽃 말고 숯불처럼 살자)


불멍을 했습니다. 

그리고 블멍도 했습니다. 


불멍을 잘했습니다. 

쉽고 편안하고 고요했습니다. 

또 하고 싶어졌습니다. 


블멍(블러그 멍)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쉽지 않았고 편안하지 않았고 고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또 하고 싶어졌습니다. 



불꽃 말고 숯불처럼 살자


불 보면서 멍 때리기. 

불멍을 해본 지 참 오래됐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불멍을 했습니다. 한참이나 불을 보고 있는데 정말 불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날름거리는 뱀의 혀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불꽃. 불의 끝을 구경하고 있으니 점점 최면에 걸리는 듯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요. 


유혹. 

요새 가장 유혹적인 것으로 치면 스마트폰 같은 게 없습니다. 늘 유혹 당하고 있어서 유혹인 줄도 모르는 상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시간, 스마트폰을 의식하지 않는 시간이 적습니다. 걸핏하면 스마트폰을 괜히 꺼내 보거나 켜 봅니다. 아무 알림도 메시지도 없음에도 그렇게 합니다. 아무 알림도 오지 않게 설정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하여간 그걸 다 알면서도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 것은 무척 신기한 일입니다. 진지하게 탐구해봐야 할 현상입니다. 


불꽃. 

불멍을 하면서 불꽃의 탄생과 죽음처럼 생각이 바삐 움직였습니다. 화려하게 피어올라 정신을 쏙 빼놓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불꽃과 생각은 꼭 닮았습니다. 잠잠하게 있는가 싶더니 다시 경거망동. 생명이 없는 것이 생명이 있는마냥 현란하게 움직이며 눈속임을 부렸습니다. 생각의 움직임에 빠지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불꽃을 보면서 넋놓지 않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스마트폰. 

자꾸만 스마트폰에 손이 가려는 마음을 돌려 세우면서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반나절이라도 가만히 있어보자. 하루도 아닌 반나절. 그마저도 참 큰 약속이었지요. 어림잡아 10분에 1번은 스마트폰을 쳐다라도 봤던 것 같은데 반나절이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에 10분은 더욱 길게 느껴졌습니다. 자극이 줄어들자 시간은 급격히 팽창한 듯 했고, 더욱 길어진 시간을 아무 자극 없이 견디려니 좀이 쑤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려니까 아이디어는 더 많이 떠오르고 블로그에 접속해서 메모를 남기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습니다.  


숯불. 

불멍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공부가 아직도 한참은 멀었구나. 바람이 불면 주홍빛을 밝히며 익는 숯불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익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방처럼 이리저리 나풀거리며 사는 인생, 뚝심을 기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내 삶에 있어서는 그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압니다. 달군 인생 없이는 돈을 벌기도 어려울 터. 돈을 번다고 해도 의미를 찾기는 더욱 어려울 터. 내 삶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숯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어진 생명력을 다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리에서 가만히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발하는 숯불. 숯불은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자기 존재를 충실히 드러냈습니다. 


동태 눈깔. 

그리고는 다시 스마트폰을 건들고 싶은 충동. 이런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나중에 블로그에 쓰겠다면서 스마트폰을 만지려는 심산. 적자 생존, 지금 적지 않으면 날아가버리고 완전히 잊혀질 것이라는 다급함. 눈 가리고 아웅하면서 귀엽게 나 자신에게 교태를 부립니다. 어디! 마침 옆에 잡아놓은 물고기가 어느새 죽었습니다. 옆으로 누워 둥둥 떠 있는 그 물고기의 눈깔을 보고 있지나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썩은 동태 같은 눈으로'. 졸음에 겨운 중학생들의 눈동자를 바로 묘사한 그 말씀, 역시 국어 선생님의 표현력은 다릅니다. 불멍 중에도 블로그 멍은 하지 못하는 내가 썩은 동태의 눈깔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반나절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불멍은 해도 블멍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반나절도 못 가서 스마트폰을 만지던 나를 보면서 불길에 몸을 던지는 나방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으로 타이핑으로 나불대며 공연히 생명력을 소진하는 삶. 몇 천자, 몇 만자를 쏟아내도 그건 썩은 동태의 눈깔처럼 생명력이 얼어붙어 있습니다. 


다음에는 블멍에 성공하리라 다짐하면서 불멍을 마쳤습니다. 불멍은 매일 할 수 없어도 블멍은 매일 할 수 있겠다는 위로를 얻으며. 매일 블멍을 하며 숯불처럼 나를 달구는 시간을 갖자고 생각합니다. 블로그에 글을 적으며 오늘도 블멍을 하겠다고, 이율배반적으로 고요히 자기를 지키고 스스로를 태우지 않으면 아무 빛도 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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