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일인지라 퇴사하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요새는 가을을 타서 그런지 그런 분들이 더욱 많은 것 같습니다. 낙엽도 지고 날씨도 쌀쌀하니 그냥 다 그만두고 쉬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드나봅니다. 날씨도 이렇고 마음도 그러니 따듯한 차 한 잔 드리고 싶네요.
퇴사하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나 심리상담을 찾아온 분들 중에는 더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지칠 만큼 지쳤으니 퇴사욕구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거의 결정을 내린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퇴사를 결정하기 한 번 꼭 생각해보면 좋을 게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잠깐 풀어 봅니다.
생각해보면 자명한 것을 마음이 많이 힘들 때는 보지 못합니다. 퇴사하고 싶을 때도 그렇습니다. 퇴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궁지에 몰렸을 때에는 판단이 흐릿한 상황이 많습니다. 그래서 훗날 자기가 후회할 만한 결정을 내리기가 쉬운 때가 이때이기도 합니다.
심리상담 중에 퇴사 욕구를 이야기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대체로 우리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정말 그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것 같아도 '이야기한다'라는 것은 일단 그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표현입니다. 속이 답답해 죽겠으니 그 속내를 일단 들어라도 달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럴 때 잘 들어만 주어도 마음이 진정되고 정신이 명료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던 것도 잘 들어주기만 하면, 잘 들리기만 하면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살아납니다. 사직서를 낼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이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답답함이 해소되고 나면 정말로 사직서를 낼지 말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정신 에너지가 꽉 막혔던 것이 풀렸으니 이제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쓰일 수 있습니다.
퇴사욕구가 치밀 때에는 한 템포 늦추어야 합니다. 퇴사를 하고 나면 절대 돌이킬 수 없기에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퇴사욕구의 정체를 밝힌 뒤에, 현실적인 대응을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어차피 한 끗만 넘어가면 퇴사를 할 생각이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지난 직장생활에는 후회가 남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는 퇴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퇴사 선택이 온전히 내 몫이어야 합니다. 떠밀려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이 선택을 돌아보면서 찜찜함이 남지 않습니다. 깔끔하게 내가 선택한 것이니 그 결과를 내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직장으로부터 나오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다른 더 좋은 곳을 향한 움직임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직장이 싫어서 나오게 되면 내 삶의 방향도 잃을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 직장을 정해놓지는 않는다고 해도 다음 삶의 방향은 분명해야 합니다. 죽기보다 싫어서 직장에서 나오는 것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퇴사가 너무도 싫었던 회사생활보다는 좋은 기억이 되려면 그 다음 스텝, 그 다음 삶의 방향 정도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내 삶이므로 나는 이것을 선택한다.
좋든 안 좋든 그 결과도 달게 받겠다.
그 또한 내 몫이니까.
떠밀려 나온 퇴사는 떠밀려 나오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일하면서 그만큼 떠밀렸으면 됐지, 퇴사까지 떠밀릴 필요는 없겠지요. 떠밀린 퇴사가 안 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기 위해 경로를 바꾸는 것이어야 합니다. 정신이 흔들려서 도저히 못 살겠기에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의 접근은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퇴사하고 싶을 때에는 회사로부터 나오는 것보다 나온 뒤에 어디로 가고 싶은 지가 더 중요합니다. 나온 뒤에 가고 싶은 곳이 없으면 잠깐의 자유 뒤에 패잔병처럼 심한 무력감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반면에 '~로 향해 가고 싶다!'라는 마음에는 이미 생기와 의욕이 있습니다. 생기와 의욕이 있으면 후회가 오더라도 가볍게 지나갑니다. 내 앞에 놓인 삶을 내 스타일대로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퇴사가 아니라 퇴사 이후의 삶입니다.
퇴사만 그런 것이 아니겠지요. 어려운 문제 속에 있을수록 그 문제에 골몰하는 것보다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미 수많은 문제를 겪고도 이만큼 살아왔습니다. 그 문제를 다 해결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살아왔지요. 앞으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팽팽한 양립 속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에는 '~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