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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6. 2022

원망감과 분노감 해소, 떼찌 말고 나를 이해하기

[1분 인생 힌트] 원망감과 분노감 해소, 떼찌 말고 나를 이해하기


심리상담이 세상에서 없어지려면? 

사람들이 원망할 줄도 분노할 줄도 모르게 되면 됩니다. 


뜬금 없는 질문을 해봅니다. 심리상담이 없어질 정도로 세상 사람들이 다들 마음 편해지길 바라며 자문자답을 해봅니다. 원망감과 분노감은 다른 부정적 감정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감정들이 쉽게 발동이 걸리지 않으면 세계 평화도 금세 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감정, 인간다운 감정이 원망감과 분노감입니다. 그만큼 쉽게 다루기 힘든 감정이기도 하지요. 펄펄 끓는 감정, 제어하려고 해도 좀처럼 제어하기 힘든 감정. 이런 원망감과 분노감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잠시 생각해봅니다. 



떼찌? 이제 그만하면 됐지! 


마음을 다스리는 모든 방법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내 마음은 내 것이니까요. 아무리 주위 상황이나 주변 사람들이 자극을 주었다고 해도 지금 나에게 있는 감정은 내가 느끼고 있는 내 감정입니다. 그래서 내 안을 살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원망감과 분노감도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원망감이 클 때는 이렇게 이야기해도 원망감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 같아도 심정적으로는 와닿지 않기 쉽습니다. 이미 원망이 되고 있는 판에 이 원망도 내 탓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즉각적인 거부감이 생기기 쉽지요. 원망은 이미 내 밖을 향하고 있는데, 나의 외부를 향해 불길을 뿜어낼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내 안을 보라고 하다니요. 지금 내가 체험하고 있는 내적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떼찌! 
(어릴 때 들었던 마법의 말)



마음은 탓하고 싶어 합니다. 떼찌! 어렸을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돌이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아무 잘못 없는 땅바닥에 떼찌를 하면 금세 눈물이 마르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지요. 남을 탓하면 편하기에, 내 잘못이 없는 것으로 치면 편하기에 우리는 전통적으로 그런 기술을 전수해왔습니다. 원망하고 있을 때의 마음이 꼭 떼찌 상태입니다. 실제 잘잘못이 어떻든 내 마음은 떼찌하려고 합니다. 


떼찌를 하면 마음이 편하긴 한데 아쉬운 점은 매번 떼찌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떼찌 중독. 떼찌가 그칠 줄을 모릅니다. 마음에서 원망감과 분노감이 올라올 때마다 피곤하게 떼찌를 해야 합니다. 내면에 아무도 모르게 켕기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떼찌는 더욱 강력해집니다. 떼찌가 반복되고 강력해질수록 내면에 은밀한 자책이 쌓입니다. 내 마음은 뒷전이 됩니다. 


원망감과 분노감은 대상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원망감과 분노감이 지속되는 이유는 마음이 계속 바깥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지요. 그 사람이나 그 상황 때문에 시작된 감정이라 그쪽을 향해 마음이 자꾸 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나의 외부로 중력처럼 끌려갑니다. 원망감과 분노감에 휩싸여 내가 타는 줄도 모르고, 내가 그 화마에 기름을 붓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바깥을 향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내 마음을 돌보는 것에 소홀해집니다.



내 마음이 먼저다.



자 이런 사태를 알았다면 이제 다르게 해봅니다. 이런 악순환을 깨기 위해 정신이 자꾸 그 상황에 그 상대에게 꽂히는 것을 멈추어 봅니다. 내가 원망감과 분노감을 다루고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감과 분노감이 나를 다루고 농락하고 있는 것을 멈춥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떼지 마음을 넘어서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괴롭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괴로운 것은 억울하고 분하고 복수하고 싶은 나머지 내가 나를 홀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지혜롭게 이 상황을 다시 봅니다. 내 마음이 외부에 감정을 쏟아내서 원망감과 분노감을 해소하려고 했다는 것을 잘 들여다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심정이었겠지만 그건 원망감과 분노감이 추라고 내게 명한, 억지 춤을 추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잘 보았다면 이제는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은 멈추기로 합니다. 그 인간, 그 상황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 골머리 썩지 말고 내가 내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습니다. 이해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나입니다. 이해받고 싶은 나에게 나의 이해를 돌려줍니다. 그 사람을 보느라 나를 못 보았지만 이제는 나를 먼저 봅니다. 내 마음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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