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둘 Oct 26. 2022

절대 용서 못해도 용서를 선택하기

[1분 인생 힌트] 절대 용서 못해도 용서를 선택하기


용서. 

단어를 듣기만 해도 고구마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잘못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막힌 듯 캑캑거리는 중이라 단짠맛을 급히 들이키고 싶다면 요새 심리학에서도 하는 말이 제격입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갑자기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지요. 그런데 뭔가 허전하지 않나요? 체증이 내려가면 속이 다 시원해야 하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 그건 뭘까요? 그리고 왜 유구한 전통의 종교에서는 다 용서를 권장하고 있는 걸까요? 부담스럽게 말이에요. 


용서할 수 없을 때, 용서하지 못할 때, 절대 용서 못해서 남아 있는 일말의 감정도 훌훌 털어버릴 수는 없을까? 그 마음에 미적지근한 느낌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용서를 해도, 안 해도 내 자유 


용서하지 않아도 됩니다. 

심리상담 중에 대개는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그렇게 말하면 일단락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되면 마음이 편하지요. 그건 요새 시대에 참 잘 맞는 방침입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무게감을 일시에 벗어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인스턴트 같이 즉각적인 해결책. 빠르고 더 빨라야 하는 시대의 흐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방침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개운하다면, 좋습니다. 그걸로 끝이라면, 좋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하지요. 내 마음이 후련한데 뭐가 더 필요합니까? 현실적인 문제까지 없는 상황이라면 용서, 그런 거 안 해도 되겠지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구하는 사람들의 혀끝에서는 무언가 맴도는 것 같습니다. 정말 원하는 그 말. '용서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들었는데도 마음의 갈피는 완전히 잡히지 않습니다. 무언가 남아 있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용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만큼, 반대로 용서해도 됩니다. 용서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강요받지 않고 내가 기꺼이 선택했다면, 그래서 마음이 홀가분해진다면 그리하면 됩니다. 강요 받은 용서는 용서라 할 수 없습니다. 강요 받은 용서하지 않음(못함)도 용서하지 않음(못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무게가, 뭔가 눌리는 게  느껴지면 솔직해야 합니다. 전문가의 말에 의지하고 심리학, 철학, 종교 등에 의존해서 내가 원하는 말을 듣고 안심하려고 하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그 마음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의지하고 의존해서 일단 안심하려는 마음. 그것도 보지 않고 이런저런 말과 '주의'를 듣고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하면 까진 상처를 치료하지도 않고 덮어버리려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하지 않을 자유만큼 동등하게 용서할 자유도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기를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만큼 용서하기를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짓눌린 무게를 벗고 자유롭고 상쾌해지는 것입니다. 용서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 있다면 용서를 하지 않을 자유도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면 좋습니다. 용서를 하지 않겠다는 의분에 짓눌려 있다면 용서를 할 자유도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면 좋습니다. 어느 쪽이든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자유가 있고 권한이 있습니다. 


하나가 도그마가 되면 다른 하나를 배척하려는 게 마음의 단순한 계산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한 가지 생각, 주의에 사로잡히고 마음은 완고하고 강퍅해집니다. 고구마 먹다가 목 막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때는 용서를 하든 안 하든 못하든 그건 마음의 자유와 상관없습니다. 도그마(희한하게 고구마랑 발음이 비슷하지요.)를 하나 잡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은 이미 팍팍합니다. 전문가나 심리학이 용서를 해야 한다,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주길, 그런 말을 동아줄처럼 붙들려는 그 마음은 이미 자유롭긴 글렀습니다. 


그럼 어떡합니까? 이런 고구마 같은 소리나 해대고 있으니 답을 원하실 듯 합니다. 정답은 자기가 선택하면 됩니다. 마음이 자유로운 쪽으로. 자기 기만하지 말고 털끝까지 자유로운 쪽으로. 그리고 일말의 자기 기만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싶다면 오히려 내 마음이 기울고 있는 쪽의 반대편을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용서하는 게 맞다. 용서를 해야만 마음이 자유로워진다!'라고 마음이 소리치고 있다면 용서하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절대 용서해야만 하는 마음이 딱딱하기 그지 없다면 절대 용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택해보는 것입니다. 


'도저히 아무래도 절대 용서 못해!'라고 마음이 소리치고 있다면 용서하기를 선택해보는 것입니다. 절대 용서 못해도 용서를 선택해보는 것입니다. 실제 용서를 하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나서 용서하지 않아도 됩니다. 


핵심은 내 마음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고 안 하는 것, 특히 어떤 행위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어느 쪽이든 마음의 반대편도 활짝 열어 두는 것입니다. 상쾌하고 신선한 자유의 바람이 들어오도록 가슴을 여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짜 웃음, 얼굴 근육만 웃고 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