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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7. 2022

반박시 니말이 맞음, 네 말이 맞다.

내 말이 맞듯 니 말도 맞다. 

내 마음이 맞듯 니 마음도 맞다. 

이 마음이 맞듯 저 마음도 맞다. 

정말 그렇다. 



[1분 인생 힌트] 반박시 니말이 맞음, 네 말이 맞다.


인터넷에 '반박시 네 말이 맞다'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유행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짤. 예전에 보고 웃었던 짤이 생각이 나서 첨부해봤습니다. 


이 묘한 말은 두 갈래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듣기 싫으니 나와 논쟁하려 하지 마라. 또는 네 상황에서는 네 나름대로 맞다. 첫 번째로 읽으면 네 말이 어떻든 듣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고, 두 번째로 읽으면 네 말이 응당 옳은 구석이 있으니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좀 다르게 읽어 봅니다. 언제나 그랬듯 외부의 현상을 마음의 장으로 불러옵니다. 나와 상대 사이에서가 아니라 나와 내 마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화로 읽어 봅니다. 



이 마음이 옳듯 저 마음도 옳다.


반박시 네 말이 맞다. 

반박이라는 말이 앞에 들어가서 어감이 여러 갈래로 갈리는 듯합니다. 반박이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느낌이라 '네 말이 맞다.'라고 해도 어딘가 개운한 느낌이 안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요. '반박시'라는 조건이 붙지 않으면 우리는 사실 네 말이 맞든 틀리든 별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네 말이 맞다.'라고 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나와 대립하고 있지 않은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 말에 수긍하기가 비교적 쉬우니까요. 


그래서 '니 말 맞음!'이라는 말이 유효하게 쓰이려면 나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 필요합니다. 내 말에 반박하고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내 말에 반박하는 상대가 있으려면 그전에 내 말이 있어야 하고 내 주장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기준점이 되어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옳을까요?



그런데 과연 내가 기준점이 될 수 있는 걸까요? 내가 백 퍼센트 옳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백 퍼센트가 아니라면 그 여분의 가능성만큼 타인의 반박이 맞을 수 있겠지요. 내가 꼭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옳고 싶은 만큼 상대도 옳을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는 만큼 상대가 옳을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내가 옳음을 주장하면 타인도 역시 옳을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이런 양상을 마음에 대입해 봅니다. 마음은 늘 싸우고 있습니다. '늘'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묻고 싶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늘' 그렇습니다. 안 그러면 왜 그리 생각이 복잡하고 마음이 갈피가 안 잡히고 사람들과 갈등을 빚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마음에 천사와 악마처럼 두 세력이 싸우고 있습니다. 한 세력은 '내가 옳다! 내 말대로 해!'라고 으르렁대며 우위를 점하고 다른 세력은 '그건 어딘가 석연치 않아. 니 말대로만 할 수는 없어!'라고 짜그러져서 저항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너 기준!'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큰 세력은 자기가 기준이고 맞다고 우깁니다. 때로는 두 세력의 크기가 서로 뒤바뀌기는 하지만 거의 한 쪽이 세고 한 쪽이 약합니다. 


누가 옳은 걸까요? 양 갈래로 갈라진 마음에 승자는 누구인가요?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마음이 옳은 걸까요? 차근차근 질문해 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옳으면 타인이 옳을 수도 있듯이 어떤 세력이든 옳을 수 있습니다. 어떤 세력이든 옳지만 우선은 아래에 짜그러져있는 마음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위에 있는 마음이 자기가 기준점이 아닐 수 있음을 알고 양보해야 합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마음을 먼저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사회의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과학 실험 결과에 의하면 부의 분배가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마음에도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짜그라져 있는 마음에 먼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어라? 반박하네?

그렇다면!

그래, 그 마음도 맞다. 



주로 하는 생각과 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닌 것이 마음 어딘가에서 걸리적거린다면 일단 인정하고 봅니다. 그것이 등장한 이유가 있을 테지요.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겁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튀어나와서 나 자신을 괴롭히려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소외되고 침식되어 이제는 내 존재를 흔들지도 모르니 주인에게 신호를 주는 겁니다. 이제 그만 나를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를 살리고 싶다고, 그래서 내는 목소리입니다. 워낙 오랫동안 파묻혀 있다가 나타나니 이질적으로 느껴질 뿐. 그 또한 소중한 나의 생각과 감정입니다. 후미진 곳에서 내 존재를 지탱해 온 것들입니다. 


이런 사정이 이해가 된다면 내 마음도 잘 배려해 볼 수 있습니다. 타인 눈치만 살피지 말고 오랫동안 홀대했던 내 마음에도 이제 눈길 좀 줘 보는 것입니다. 특히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대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라면 더욱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반박하는 마음에게 '네 말이 맞아.'라고 하면 존재를 인정받은 마음이 조금은 양순해지겠지요. 마음의 평화가 조금 더 가까워지겠지요. 


어때요? 

동감하지 않습니까? 

어느 쪽이든 그것도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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