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러 가기 전날 밤에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꿈에는 검은 소와 흰 소가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검은 소가 흰 소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검은 소가 땅에 남기는 발자국이 차츰 흰 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두 소는 인사를 하고 말을 하는 듯 서로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검은 소는 꼬리 끝부터 점점 흰 소와 똑같은 흰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털에 흰 눈이 차곡차곡 쌓이듯 검은 소가 흰 색으로 변해 갔습니다. 서로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지자 검은 소는 흰 소와 크기나 색이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둘을 거의 분간할 수 없게 되자 두 소는 함께 걸어서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날은 그를 두 번째로 만나러 가야 했습니다. 가는 길에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남성 진훈 씨는 회사 동료의 사고사로 인해 처음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상담인데다가 제도상 산재사고 이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상담이기도 해서 대부분의 내담자들이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진훈 씨는 첫 상담 시간에 유독 무뚝뚝하고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대충 사실 관계에만 대답을 하며 이런 상황에서 심리상담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지요. 심리상담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를 두 달여 만에 다시 찾아가는 길이 마음 편할 리 없었습니다.
“기타 치는 부처님이요?”
그가 어디 있는지 묻자 다른 동료가 농담으로 반문하며 휴게실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상담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찾아 나섰던 터였습니다. 휴게실 가까이 가자 기타 치는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일 년도 버틸 거야. 일어나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문 틈 사이로 진훈 씨가 보였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기타를 안은 채로 들어오라고 말했습니다. 회사에 상담을 안 받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뭘 또 왔냐고 인사하고는 기타 피크를 옆에 있는 탁자에 올려놓았습니다. 피크에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소 두 마리의 엉덩이와 꼬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며 속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담사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씩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상담은 됐고 먼 길 오셨는데 점심이나 드시고 가세요. 그는 자기도 지금 안 먹으면 굶어야 된다며 막무가내로 상담사를 끌고 구내식당으로 갔습니다. 콩나물국밥을 앞에 두고 안부와 근황을 묻는 상담사의 말에는 대강 대답을 한 뒤, 그가 말했습니다.
“인생은 방황을 요구해요. 상담사님은 그 방황을 다 마쳤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십우도 아시죠? 공부 많이 하신 분이니까 아시겠지. 동자승이 검은 소를 찾아서 길들이니까 흰 소가 되고 나중에는 다 사라지고, 뭐 깨달았다더라, 그런 내용이잖아요. 암만 봐도 당최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게 나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데. 나는 십우도를 시작도 못한 거 같은데 같이 일하던 사람은 벌써 저 세상으로 가고. 깨달았다는 게 다 뭔지, 깨달음이 다 뭔지.”
담담히 말하는 그에게 어젯밤 제 꿈을 들여다봤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묻지는 못했습니다. 대신에 지난 번 처음 봤을 때는 무뚝뚝해서 말 붙이기 힘든 분인 줄 알았다고, 그간 무슨 변화가 있었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고인이랑 제가 제일 친했다고요. 숙소도 같이 쓰고 같은 조로 움직일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가 버리니까 아무것도 안 되는 거야. 일이고 뭐고, 밥을 먹는 것도 그렇고 그냥 계속 한숨만 나오고. 고인 모신 자리에서 유족들을 만나서 제일 가깝게 지낸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고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무슨 정신이 있겠어.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엄청 울었다고. 집에 와서 보니까 눈만 돌리면 유품이 보이는데 그걸 그대로 둘 수가 있나. 유족들은 이미 한 번 둘러보고 가서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달라고 했지. 그래서 유품을 정리하는데 몇 명 도와주기는 했지만 거의 다 내가 처리했다고. 그때 내 마음이 어땠겠어요? 근데 갑자기 고인이 치던 기타가 눈에 띄었는데 그건 차마 못 버리겠더라고. 이상하지. 같이 비번이면 함께 기타치고 노래 부르고 그랬는데 참.”
혼자 중얼대듯 말하던 그가 고인과의 추억이 떠오르는지 상념에 사로잡혔습니다.
“아까 내가 치던 기타가 그 기타에요. 십우도 얘기도 그 분한테 처음 들은 거고. 나한테 십우도 얘기해주면서 기타 피크에 그 스티커도 보여 줬었다고요.”
전날 밤 꿈이 다시 떠오르고 이 모든 것이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면식 없는 고인이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고 나서 그는 매일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 기타로 노래를 부르면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거야. 약간 힘이 솟는 달까. 사람 죽은 마당에 웃기는 얘기지만 고인이 일부러 남겨 놓고 간 건가, 싶기도 하고. 나 혼자 하는 위령제라고요 허허.”
그는 그 기타를 잡은 이후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사람들이 더 자극받고 동요될 수 있다고 사측이 반대했던 추모식을 스스로 주도하고, 매일 일이 끝나면 곧장 유족들을 만나러 가서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차분하게 말을 마친 그의 얼굴이 조금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콩나물국밥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습니다.
그 날 먼 길을 오가는 것이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골아 떨어졌습니다. 잠깐 사이에 꿈을 꾸었는데 흰 소에 목동이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브라보, 기타 줄이 출렁이며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브라보, 햇빛에 반짝이며 기타 피크가 하늘로 솟구쳤습니다.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리듬에 맞춰 피크가 움직일 때마다 두 마리 소의 꼬리가 춤을 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