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편지 11

브라보 마이 라이프! 흰 소를 타고 간 사나이

by 나무둘

안녕하세요 진훈 씨.

잘 지내셨나요? 진훈 씨의 기타와 노래 소리가 다시 듣고 싶습니다. 투박하지만 담백한 멋이 있었던 기타 연주. 기교 하나 없이 불러도 질리지 않았던 노래 소리.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진훈 씨와의 상담을 떠올리며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 먹었던 콩나물국밥과도 참 잘 어울렸던 그 멜로디를 흥얼거려 봅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들,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이 나고 지는 것은 가장 불가해한 것입니다. 왜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왜 그때 떠나야했는지.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아무리 질문해보아도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기 때문에 심리상담사 같은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세상의 한가운데서 내담자와 마찬가지로 상담사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찌됐든 인생은 계속 흘러갑니다.


진훈 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참으로 무력했습니다. 산재사고로 동료가 죽은 현장에서 진행하는 심리상담은 보통의 심리상담과는 다릅니다. 이미 사망 사건 자체로 뒤숭숭한 분위기인데 무력감, 무망감, 두려움, 분노, 적의, 죄책감 등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돌고 도는 내담자와 마주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그분들을 내담자라 부르는 것도 적당하지 않습니다. 내담자라는 말은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이야기를 하러 오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이야기를 하러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산재사고 후의 제도적 절차상 이야기하라고 강요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뒤에 그 기억과 감정을 말로 내뱉으면 사후 정신 건강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 연구로 밝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한들 죽음이 일어난 사고 현장에 매일같이 출퇴근을 하고 같은 자리를 지키며 생업을 하는 그분들에게 원하지 않는 심리상담을 하도록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 마뜩찮은 생각이 드는 가운데 용기를 내어 진훈 씨를 만났습니다. 많은 산재 심리상담 장면을 통해 거절과 거부에 이미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기는 했지요.


첫 시간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트라우마 심리치료에 대한 소개 등 원론적인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그 시간에 산업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닳고 닳았다면서 대뜸 말씀하셨지요. 자기가 고인의 가장 친한 단짝이었다고. 매일 붙어 다니며 동고동락하던 사람이 떠났는데 무엇으로 위로가 되겠느냐고. 이 상담이 부질없을 것이라고. 상담사에게 괜히 헛힘 빼지 말라고 타이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여 만에 두 번째로 진훈 씨를 만나러 가던 날. 그 사이 전화 통화로 몇 번 목소리는 들었지만 좁혀지지 않은 우리 관계를 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며칠 동안 간간이 생각을 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다른 분들보다 유독 무뚝뚝하고 심드렁했던 진훈 씨에게 무슨 심리상담을 해야 하나. 도움이나 될 수 있을까. 이번에도 가봐야 점잖게 타이름이나 듣지 않을까. 행정적 절차에 필요한 상담사 역할에 그저 충실하기로 마음먹고 진훈 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기타 치는 부처님. 상담시간에 안 나타난 진훈 씨의 행방을 묻자 어떤 분이 진훈 씨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과연 진훈 씨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계셨지요.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일 년도 버틸 거야.’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셨나 봅니다. 기타를 내려놓더니 상담은 관두고 밥이나 먹자고 구내식당으로 끌고 가셨지요. 콩나물국밥을 앞에 두고 갑자기 불교에서 깨달음의 과정을 묘사한 십우도에 대해 아느냐며 이야기를 꺼낸 진훈 씨. 진솔하게 그간의 생활을 풀어놓는 진훈 씨를 보면서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이야말로 진훈 씨가 원하는 상담의 방식이겠거니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를 같이 썼던 터라 거의 다 내가 유품을 정리했는데 고인의 기타만큼은 못 버리겠더라. 십우도도 고인한테 처음 들은 거라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애틋한 상념에 젖으셨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위로의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었으나 죽음을 삼키고 또 죽음 곁에서 당분간 살아야 하는 분에게 할 만한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할 말을 잃었던 것은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진훈 씨를 두 번째 만나러 가기로 한 전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검은 소와 흰 소. 꿈에 두 마리의 소가 나왔습니다. 검은 소가 흰 소에게 서서히 다가갔습니다. 검은 소가 발을 뗄 때마다 발자국에서 흰 빛이 반짝 빛났습니다. 흰 소과 검은 소의 거리가 가까워졌습니다. 두 소가 서로 마주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습니다.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자 검은 소가 점점 흰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꼬리부터 점점 하얗게 물들어갔습니다. 서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하얘지고. 이제 어떤 소가 처음의 흰 소였는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두 소가 함께 시야에서 멀리 걸어가더니 사라졌습니다.


이 꿈과 십우도 이야기. 그리고 묘하게도 기타 피크에 붙어 있던 스티커에도 두 마리 소의 엉덩이와 꼬리가 그려져 있었지요. 그날 그 자리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고인과 진훈 씨와 제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위로를 받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꿈은 저에게 이렇게 미리 알려준 것도 같습니다. 네가 그분을 상담하러 가는 게 아니다. 그분을 만나라. 함께 있어라. 그거면 충분하다.


고인이 남긴 기타를 치면 왠지 힘이 솟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지요. 그렇게 기타를 치며 혼자 위령제를 하고 사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추모식을 주도하고 매일같이 퇴근 후 늦게까지 유족들과 함께 조문 자리를 지켰다는 말을 들으며 가슴이 뜨끈해졌습니다. 말을 마치고 평온하게 앉아 있는 진훈 씨에게 심리상담사가 할 일이란 없었습니다.


진훈 씨와의 상담을 돌아보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상처는 꼭 치유되어야 하는 것일까. 진훈 씨의 변화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진훈 씨는 이렇게 반문하셨던 것 같습니다. 치유하지 않아도 내 삶을 꼭 끌어안으면 그 상처에서도 꽃이 핀다고. 온통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면서 말이지요.


‘신성한 영혼이 머문 자리에는 위대한 향훈이 남는다.’ 그날 집에 돌아와 상담노트에 적어놓은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진훈 씨에게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악 속에서도 최선을 살아주셔서. 뜨거운 향훈을 남겨 주셔서. 인간의 최선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 진훈 씨의 삶이 이제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찬란히 빛나길 기원합니다.




▼ 진훈 씨와의 상담 사례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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