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지 3. 눈물①

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by 나무둘

내담자의 눈물이 버겁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언젠가 내담자에게 이와 비슷한 질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께도 똑같이 묻고 싶네요. 상담실에서 생전 울지 않던 제가 눈물을 흘린다면 감당하실 수 있는지요? 만약 정말로 이렇게 소리내어 물으면 선생님은 답하시겠지요. ‘그 질문에 자기 자신은 무엇이라고 답하나요?’


글쎄요. 저는 이렇게 답할 거 같아요. 저도 제 눈물이 버거워 가급적 울지 않으려 했던 때가 있었다고. 하지만 혼자 있을 때 더 이상 눈물을 참지는 않는다고. 오히려 펑펑 울어내고 싶은데 가슴만 울고 눈물은 울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다고.


눈물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상담실에서 마주 보았던 수많은 눈의 물이 떠올랐어요. 때론 시간을 아득하게 하고 정지시키는 것 같은 눈의 물. 티 없이 맑은 눈에서 흐르는 물. 물이 눈에서 나와서 눈물이라고 부를 뿐인데 코에서 나오는 물과는 달리 사뭇 격조 높은 물이 눈물이에요. 상담을 하면서 한때 그런 망상을 한 적도 있었지요. 저 울음을 내가 대신할 수 있다면. 저 눈물이 마르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심리상담사는 망상의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타인의 눈물을 마르게 하는 꿈을 꾸다니. 꿈도 참 야무진 꿈을 꾸었어요.


누가 내 눈물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 내 눈물을 대신 흘려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제 경험상 그건 불가능해요. 자기의 눈물은 자기만의 것이에요.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어요. 내면 깊은 곳에서 거대한 눈물의 바다가 소용돌이치면서 자기 존재를 알릴 때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옆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그 곁을 지켜주는 것이지요. 울고 또 울도록. 자기 눈물을 다 울어내도록. 휴지가 동나지 않도록. 곁에서 휴지가 떨어지지 않게 잘 챙겨주는 게 옆 사람이 할 일인 거 같아요.


너무 힘들고 외로웠던 20대 어느 시절, 2주 내내 울기만 했던 적이 있어요. 물론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밥도 먹고 잠도 잤지요. 하지만 하루의 주된 일과는 울기였어요. 정말 신기할 정도로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여름 장마 때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비가 도무지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 때가 있잖아요. 마치 그런 것처럼 눈에도 저 깊은 곳에 구멍이 났는지 눈물이 계속 났어요. 그때가 제 인생의 장마였을까요? 뭐 그리 울 게 많았는지 지금은 생각도 안 나요. 2주일 간 하루도 쉬지 않고 낮이고 밤이고 울었던 것은 기억이 나요. 이 편지를 쓰면서 까마득히 잊었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그때 누가 저에게 제 눈물을 대신 울어줄 수 있고 닦아줄 수 있고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했으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니가 내 인생을 아니? 니가 눈물의 맛을 아니?’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도와줘서 고맙다고 느낀다기보다는 눈물이 범람하는 와중에 눈물의 참 맛도 모르는 무지렁이를 상대해야 한다고 짜증을 냈을 수도 있고요. 오히려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계속 휴지를 건넸다면 그게 훨씬 고마웠을 거예요. 눈물 콧물로 얼굴이 뒤범벅됐는데 휴지가 떨어지면 울다 말고 휴지를 찾아야 하잖아요. 그럼 눈물의 맥이 끊겨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울면서 휴지를 찾는 건 울어야 할 몫과는 별개로 너무 심란한 일이에요.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한 채 심란해진다면 인생이 너무 가혹한 걸요. 울고 싶을 때는 하염없이 울 수 있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지요.


남들이 우는 이야기, 옛날에 울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제 마음속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요. 너 괜히 네가 울었던 거 이야기하기가 머쓱해서 변죽을 울리고 있잖아. 맞아요. 정작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기가 약간 창피해서 딴소리를 하고 있네요. 그날 상담실에서 나와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피하고 싶은 저의 방어기제일 테죠. 선생님과 상담하고 나와서 그날 바로 집에 가지 않았어요. 근처에 공원이 있으면 산책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런 공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세련되지 않은 구식 아파트 단지에 들어갔어요. 조금 낡은 느낌을 주는 아파트라야 입구에 차단기도 없을 테고 그 공간이라도 나를 받아주는 느낌이 들 것 같았거든요. 적당히 사람 눈길을 피할 수 있을 것 같고 발길이 뜸해 보이는 공간을 물색했어요. 역시나 구식 아파트는 그런 정감이 있더라고요. 수풀이 우거진 공간에 나만의 공간처럼 비어있는 벤치 하나를 찾을 수 있었죠. 거기에 앉아 멍하니 있었어요. 상담실에서 차마 울지 못했던 눈물이 났어요. 상담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개인적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마음껏 울었어요.


울면서 생각했어요.

여기서 왜 갑자기 눈물이 날까? 상담실에서는 왜 울 수 없었을까?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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