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겠지 싶었는데
아침 편지를 시작하고 이리도 빨리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글의 주제를 정하려고 머릿속을 들여다보는데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괜찮은데 저것도 괜찮은데
그러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고.
결국엔 뭘 써야 할지 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안 쓰면 될 텐데 이왕에 쓰기로 한 거 그냥 이렇게 씁니다.
뭐라도 쓴다.
뭐라도 생각나겠지.
확정하지 못한 생각과 단어들이 떠다니는 걸 보다가 아침 청소할 때 본 낙엽들이 떠오릅니다.
이 쪽 거리에 부산하게 흩날리고 있는 낙엽들.
저 쪽 구석에 벌써 미화원 분들이 깨끗이 쓸고 간 거리.
아직 낙엽이 나뒹굴고 있는 이 쪽과
깨끗이 정리된 저 쪽은
내 머릿속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내 뇌의 한구석은 저렇게 정리되어 있고
또 다른 한구석은 이렇게 나부끼고 있겠죠.
늦가을에 낙엽 같은 생각들.
겨울을 알리며 휘날리는 낙엽 같은 생각들.
낙엽을 바라보며
생각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렇게 가지런히 정리하고 모아서 마대자루에 잘 넣어 놓았는지
혹은 아무렇게나 뒹굴도록, 나름의 운치라며 그냥 방치해 두고 있는지.
나는 나의 생각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관찰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생각에 대한 생각.
낙엽 같은 생각을 덧댄 꼴.
이 생각마저도 별 필요 없는 생각인데
이미 지저분한 낙엽의 거리에 또 하나의 낙엽을 보태는 일.
이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나는 살고 있구나.
사실 그렇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문자가 그렇고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글도 그렇고
우리는 낙엽 같은 글을 써 대고 옮기고 바라봅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어차피 다 낙엽인 것을.
빨간 낙엽, 노란 낙엽, 예쁜 낙엽, 찢어진 낙엽.
결국엔 다 마대자루에 넣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낙엽질(?)은 그만하고
이 낙엽들 싹싹 쓸고 싶다.
그렇게 쓸 수 있는 빗자루나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말로 할 말이 없으면 좋겠다.
문득 여기에 이렇게 써 대는 것이 빗자루 질이 아닐까 합니다.
본의 아니게 당신에게까지 낙엽을 뿌려댄 것 같군요.
가을동화처럼 낙엽의 정취를 느꼈다고 너그러이 받아주시길.
오늘 당신은 어떤 낙엽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낙엽들은 나부끼고 있습니까?
아니면 한 곳에 잘 모아져 있습니까?
당신의 생각도 잘 생각되길 바랍니다.
혹 그게 잘 안 되거든 제 빗자루를 빌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