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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왜 그렇게 말을 한 거야?

by 나무둘

어제 유튜브 촬영을 했습니다.

유튜브도 방송이라고 괜히 긴장이 되더군요.

원래 아무 말이나 제 생각을 펼쳐놓는 건 참 잘하는데

(저 혼자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제는 왠지 더 조심스러워 더 조신해졌습니다.


진행자의 뜻대로 잘 따라가야 할 것 같은 은근한 압박감.

어쨌든 그럭저럭 인터뷰는 잘 진행이 됐는데

중간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심리상담에서도 타로카드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진행자가 물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아는 타로상담하고는 다를 것 같은데요. 진짜 심리상담에서는 타로카드를 어떻게 활용하나요?"


그래서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타로카드를 여러 장 뽑잖아요. 그러고 나면 먼저 그 그림들의 이야기를 잘 끼워 맞추면 돼요."


아뿔싸.

그 말 한마디에 진행자가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게 그렇게 웃긴 일인지.

제가 참 난감하더군요.


한참 신나게 웃던 진행자가 말했습니다.

너무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놀랐다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가 심리상담사에게 직접 타로를 배울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를 꿰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상담심리적인 훈련이 안 된 사람들이 타로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그 부분이라고 하더군요.

대부분이 카드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려고만 해서 앞뒤의 연결이 잘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통적인 심리상담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사례개념화'라고 해서

그 사람이 과거에 살아온 흔적, 생활환경과 주요 관계, 지금의 증상 등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는지 짜 맞추는 연습을 상담을 하는 내내 계속합니다.

지금의 상태가 하나의 스토리로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상담에서 접근하면 좋을지를 파악하는 것이

사례개념화입니다.

그 훈련을 몇 년 동안 수도 없이 해 오고 있기 때문에

전문 심리상담사들에게 타로카드를 한 줄의 스토리로 꿰는 것은 별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진행자의 말에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끼워 맞추는 거예요."


너무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걸까요?

이렇게 적고 보니 약간 감이 옵니다.

'억지를 부린다, 지어낸다, 조작한다'는 느낌으로 들렸을 수도 있었겠네요.

이렇게 구어와 문어가 다르다는 걸 새삼 자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사실입니다.

카드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고른 그 카드를 다시 바라보면서 느끼는 나만의 의미니까요.

심리상담에서 타로카드를 활용한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찾아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빵 터진 진행자의 감정과 유튜브 진행을 대신 수습해 주느라고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방금 이 편지에 쓴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진행자는 원래도 웃음이 많은 캐릭터여서인지

빵 터진 웃음을 잘 감출 수 없었습니다.

촬영 내내 그리고 촬영이 끝난 후에도

괜히 진지하게 웃겼다는 난감함과 뿌듯함이 교차했습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을 한 거야?

좀 더 그럴듯하게 멋지게 말을 하지!

예를 들면 '카드들에 행간의 의미를 잘 읽어 주는 거예요'.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말을 했더라면 훨씬 그럴싸했을 텐데.


자책과 아쉬움이 아침을 물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남들 듣기 좋은 고급진 말을 했었다면!


하지만 역시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제가 아닙니다.

그럴싸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럴싸한 인생을 거부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참으로 솔직하게 제 안에 있습니다.


그럴싸해 보이는 인생,

사이비(似而非, 겉은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인생이 싫어요!


왜 그렇게 말을 한 거야?

이 마음의 소리에 마음을 고쳐 먹고 속으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을 한 거야.'


난 나답게 그렇게 말을 했다고

다시 한번 외치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대저 모든 심리치료의 기본은 똑같습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을 했냐고 묻거든

'나는 그렇게 말을 한 거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그때 왜 그렇게 말을 했나요?

그렇게 말을 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나는 그렇게 말을 한 거야'라고 다시 말하며 당당할 수 있나요?


오늘 우리 모두

가슴에 남는 것 없이 당당한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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