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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마음의 재고를 떨이로 팔아요.

by 나무둘

호외요 호외!

쌉니다 싸요!

떨이로 싸게 팝니다!

마음의 재고를 떨이로 팔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에 청소를 했습니다.

이곳은 조금 특이한 공간입니다.

서점과 같이 있는 심리상담소.


심리상담소를 청소할 때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서점을 청소할 때는 왠지 한숨이 쉬어집니다.

같은 공간인데 심리상담소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습니다.

같은 공간인데 서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심리상담소라고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책들이 나에게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 쌓인 수많은 책들이 꽤 큰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일일이 먼지를 털면서 수많은 책들을 쓰다듬어 줄 때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떨어져 나가는 먼지와 함께

이 책들도 떨어져 나갔으면.


요새 매일 아침 바라보는 나뭇가지처럼

아무 잎도 달고 있지 않는 나뭇가지처럼

무수한 겨울 낙엽처럼

이 책들도 쏵쏵 어디로 쓸려 갔으면.


서점으로써

서점 주인으로서

서점의 책을 바라볼 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수많은 책들.

천 이천은 족히 될 것 같은 책들.

이 무게만큼 내가 오늘 청소를 하고 있구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반면에 상담소를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습니다.

심리상담에 필요한 것은 사실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탁자와 의자, 두 사람이 앉을 공간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서점과 심리상담소, 그 격차가 그만큼 더 크게 다가옵니다.


어쨌든

웬일인지

무슨 일인지

어인 일인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게

서점과 심리 상담소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 이 실정.

서점의 책들은 나에게 알려 줍니다.


이것들은 물건의 재고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재고이기도 하단다.


마음에 쌓아둔 재고가 이렇게 많다니.

도대체 내 마음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차 있는지 나도 궁금합니다.


뭘 그렇게 쌓아 놓고 도무지 팔지 않고 있는 것인지

둬서 뭐하려고 떨이로 싸게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인지

내 마음에 재고를 이렇게 쌓아두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 있는 일인지

나 자신도 몹시 궁금합니다.


책을 팔고 싶습니다.

상담은 그만 팔아도 책은 꼭 팔고 싶습니다.

엄청난 재고를 다 처리하고 싶습니다.


겨울 낙엽처럼 다 쓸려 나가길.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처럼 아무 재고도 남지 않길.

이런 나의 소망을 담아서 내 마음의 재고를 오늘 한번 살펴봅니다.


이 겨울, 곧 있으면 끝날 2022년.

나는 마음에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그 재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어떤 겨울을 맞이하고 있나요?

2022년 끝끝내 처리하지 못할 것 같은 재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처리하고 싶은 그 재고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마음도 내 마음도

텅 빈 나뭇가지 사이로 뻥 뚫린 저 하늘처럼

아무 재고도 남기지 않고

맑고 투명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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