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기승입니다.
오늘 무지하게 춥네요.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 병원에 갔습니다.
일이 년 전에도 잠시 다녔던 재활병원.
그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자니 괜히 기분이 살짝 나빠졌습니다.
옛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순 없는데 하나도 친절하지 않은 그 간호사.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뚝뚝 끊어 대답하고,
맥락에 담긴 의미도 분명히 알 텐데도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는 그 정직한 불친절함.
그 간호사를 또 만날까 약간 염려가 되었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찾아갔더니 그 간호사가 의사 옆에서 보조를 하더군요.
그래도 이번에는 좀 다르게 생각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벌써 예상했던 그 장면.
그 얼굴이 나타난 순간 가슴이 아주 살짝이지만 턱 막히는 느낌.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는 예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건조한 그 느낌.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데 어떻게 저렇게 건조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것도 나름의 생존 기술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되니 오히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예상했던 그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진료가 끝나고 두 번째로 찾아간 날.
또 마음이 걸리는 걸 느꼈습니다.
또 그 간호사를 봐야겠군.
또 그 간호사가 옷은 어떻게 갈아입고 나오라고 아주 건조하게 말하겠지.
또 그 말투에는 약간의 귀찮음과 성가심을 담고 있겠지.
또 나는 존중받는 느낌을 받지 못할 수 있어.
아니나 다를까, 그랬습니다.
꼭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이 닫히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사람이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 가슴을 닫고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마음을 열어 보자고 생각하고 아주 잠시 간호사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때 눈동자가, 실제로 그렇게 흔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그 느낌은 분명 외로움이었습니다.
타인을 쌀쌀맞게 대할 수밖에 없는 그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슴에 어떤 외로움을 품고 있으니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는 거구나.
이내 서로 눈길을 돌리고 각자의 일로 돌아갔지만
그 찰나 간의 마주침과 공명,
순간 오고 갔던 미묘한 감정 때문인지
간호사가 그다음부터는 친절하게 대하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조금의 친절이었지만요.
그리고 제 가슴도 열렸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신도 삶이 참 고단하군요.
뭔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거 같은데
그게 잘 안 돼서 참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 병원이야말로 얼른 당신이 벗어나고 싶은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이곳에 끝없이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을지도.
당신의 인간관계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외로운 것 같아요.
쌀쌀하고 건조한 말 이면에는
깊은 외로움과 갈망이 있을 거라 짐작해 보아요.
당신의 마음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당신도 나와 같은 한 인간이니까요.
외롭지 않길 바라요.
당신의 외로움을 녹일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마음이 이렇게 열리는 걸 느끼면서
간호사가 친절하기 전에 제 가슴이 친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마음의 빗장을 먼저 닫았던 건 그가 아니라 나였던 거죠.
당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무엇에 쌀쌀한가요?
가슴을 닫아거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시나 그 가슴을 다시 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신도 나도 가슴을 활짝 열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 조금도 방어하지 않고
서로를 편안하고 넉넉하게 대하는
그런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유독 쌀쌀한 오늘
우리 서로 따듯한 가슴으로
쌀쌀함을 녹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