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잡니다.
눈에 실핏줄이 사라졌습니다.
아이처럼 티 없이 맑은 눈, 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평소보다 훨씬 초롱초롱한 내 눈을 보고 있자니 감개무량합니다.
이것이 내 몸과 영혼이 원했던 것이었던가.
그렇군.
스스로 질문하고 수긍하며 나 자신에게 되뇝니다.
120% 전력을 다해 쉬자.
아침에 일어났더니 대한민국 축구가 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아무렴 세계 1위 브라질을 상대로 하니 당연히 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4대 1로 대패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약간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한 번만 더 기적을 만들어 줄 순 없었을까.
120%를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조별 예선 통과를 하는 데도 이미 엄청난 에너지를 썼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만 더,
100%가 아니면 120%로 도전해 볼 순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그러면서 내 삶을 돌아봤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120%를 요구하는가.
사실 요새 제 삶은 120% 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120%로 달리다가 탈진하고 만 것이지요.
블로그, 브런치에서 보는 수많은 부지런한 사람들에 비하면 달린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딴에는 120%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렇게 문득, 탁하고 멈춰 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은 선언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어.
영혼의 속도.
많이 회자되는 인디언 부족 이야기가 있지요.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면서 멋있게 날린 그 멘트.
'내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문창과도 안 나왔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는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연에서 언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의 속도가 영혼의 속도와 일치하고 있는지 되돌아봅니다.
지금처럼 까끌거리는 심정이 된 것은
지금처럼 삶과 나 사이에 접점이 희미해진 것은
지금처럼 늦잠을 자고 점심에 쓰는 편지를 아침편지라고 우기는 것은
다 영혼의 속도를 존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태극전사들을 직접 만나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120% 전력을 다해서 쉬어 주세요."
우리는 모두 한 만큼 잘한 것입니다.
가다가 말면 아니 간만 못한 게 아니라 그만큼 잘 간 것입니다.
이제는 120%가 아닌 100% 꼭 내 영혼의 속도에 맞는
삶의 속도를 찾고 싶습니다.
꼭 그 속도로 가고 싶습니다.
정속주행.
안전운행.
무사귀환.
내 삶이 내 영혼과 맞갖길 바랍니다.
당신의 영혼은 어떤 속도로 가고 있나요?
당신의 삶과 당신의 영혼은 일치하고 있나요?
때로는 120%로 쉬어야 그 속도에 맞지 않을까요?
당신도 나도 오늘 하루
120% 전력을 다해 쉬면서 영혼과 삶이 일치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