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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향수는 쏟아져야 퍼져요.

by 나무둘

나만의 향기를 내고 싶나요?

그럼 거침없이 쏟아지세요.

향수는 쏟아져야 퍼져요.


오늘도 아침 일찍 서점이자 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월요일이니까 더 힘을 내서요.

기운차게 한 주를 시작하자는 다짐으로.

이번 주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점 카운터를 지나서

책장과 벽 사이 좁은 통로를 지나면 청소도구를 모아 놓은 곳이 있어요.

청소도구를 가지고 서점 공간으로 돌아와야 청소를 할 수 있는데

통로가 좁아서 청소기나 먼지떨이가 여기저기에 걸리곤 해요.


하필이면 그 좁은 통로에 나중에 버리겠다고 종이박스를 쌓아두었지 뭐예요.

아침부터 청소도구를 들고 나오면서 그 종이박스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넘어지면서 앞에 있던 책장의 뒷면에 부딪쳤고,

그 책장 위에 올려져 있던 향수병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병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향수가 바닥에 흥건히 쏟아졌고

나무막대인 리드 위의 꽃 장식도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습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잠깐 생각했습니다.

기분 좋게 청소하고 산뜻한 기분을 내려던 참인데 이게 뭔가.

이걸 어쩌지?


그런데 그 찰나.

바닥에서 올라오던 진한 꽃 향기.


후각이 생각을 정지시키고

'아 향수는 쏟아져야 제맛이구나.'

날벼락같은 향기에

사태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온전함이란 무엇일까요?

온전함이란 형체가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완전히 부서져 널브러져 있는 꽃잎과 아무렇게나 쏟아진 향수는

비로소 온전하게 공간을 향기로 가득 메웠습니다.


각종 종교나 수행 전통에서 보면 도유 예식이 있습니다.

신의 축복이나 가호를 빌며 기름을 이마 등에 바르는 예식.

그것이 떠오르면서 이 사태가 신의 장난처럼 느껴졌습니다.


신이 이 서점과 상담센터에 도유 예식을 한 것이구나.

아침 댓바람부터 성스러운 축복을 쏟아준 것이구나.

좋은 향을 내어 오고 또 오고 싶은 곳이 되어라.

이름도 바꾸었으니 잘 되어라.

사람들이 많이 오너라.

돈 많이 벌거라.

흥하거라!


신께 감사드렸습니다.

온전함을 온전하게 보지 못한 제 시선을 잠시 반성하고

다 쏟아지도 부서지고 흩어져 망가져 보이는 가운데도

온전함을 만드는 신의, 우주의, 자연의 섭리.


오늘 아침 인생은 나에게 그것을 가르치려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향수는 쏟아져야 퍼진단다.


당신은 어떤 향을 품고 있나요?

당신 인생에 그 향기가 잘 퍼지고 있나요?

그 향이 온전히 나도록 당신 스스로 쏟아지고 있나요?


당신과 나의 산뜻하고 고운 향기가

널리 널리 퍼질 바랍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당신도 나도 신의 축복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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