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상담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말이 통하니까 기분이 정말 좋아요.
상담이 재미있어요.
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요.
주위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말이 통한다는 것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섹스만큼이나 큰 쾌감을 주는 것이 말이 통하는 잡담이라고 하지요.
말이 수월하게 통하는 것.
내 마음이 철석같이 상대 마음에 달라붙는 것.
상대의 말이 척하면 척, 내 마음과 일치하는 것.
가슴이 아주 시원하고 편해지는 느낌.
우리가 매일 찾는 즐거움이 이런 것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커피숍에 앉아서 술집에 앉아서 떠들고 떠들어도
헤어질 때면 다음에 못 다한 이야기를 하자고 약속을 하며 아쉬워하지요.
내담자가 상담을 찾아오는 것은 결국은 외로움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괴롭고 힘든 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터놓고 말할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 견뎌야 하기 때문이지요.
복잡한 내 상황을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하기도 힘드니
전문가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때 공감과 수용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말이 통하는 느낌일 수 있어요.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어요?
그 답답했던 마음에 착, 하며 달라붙는 말을 나눈다는 게.
내담자가 속이 뚫리는 것 같다는 말을 할 때면
저도 함께 속이 뚫리는 느낌이 듭니다.
아 통했구나.
이것이 내담자가 좋아하는 말이구나.
그제야 상담자도 관계 안에 마음 놓고 뛰어들 수 있습니다.
어떤 언어가 우리에게 통하는 것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말로 함께 추는 댄스 댄스.
어제는 발에 티눈 같은 것 때문에 피부과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참 친절하시더군요.
그 친절함은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이었지요.
'난 진료 안 볼래요. 우리 함께 얘기나 해요~'
병원에서는 보기 드문 침묵과 여유가 허용되었어요.
참 신기한 것은 1초, 2초, 3초 침묵을 기다려 주는 그 선생님의 느긋함에
선생님이 더 친구처럼 느껴졌다는 점이에요.
진료실에 계속 있어도 될 것 같은 느낌.
진찰 끝나고 치료로 휑하니 내보내지는 게 아니라
나도 현대적 의료 시스템에 따라 서둘러 나가야 될 게 아니라
차 한 잔 하듯이 얼마든지 더 있어도 될 것 같은 느낌.
환자가 아닌 내가 허용되는 것 같았고
어떤 질문도 해도 될 거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 놀라워라.
침묵과 느긋함의 향기란.
주로 상담자 입장에서 살기 때문에
오히려 침묵이 주는 효과에 대해서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수도 없이 침묵하는 순간이 있는 심리상담이지만
그 침묵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것인지 잘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침묵의 느긋한 향기를 어제 맡았어요.
기다려주면서 더 질문할 게 없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뜸 들이면서 환자의 속도에 맞게 맞장구치면서
설명을 한 번에 끝내려 하지 않고
서두르는 기색 없이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주었던 의사 선생님.
그냥 우리 함께 떠들어요.
원하는 건 다 물어보세요, 얼마든지요.
나 지금 시간 많아요.
이런 느낌이랄까요?
그 느긋한 친절 덕에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자꾸만 또 가고 싶은 병원이 되어 버렸지요.
병원이라는 곳은 자주 가면 안 되는데 말이지요.
당신은 말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 있나요?
척하면 척, 통하는 그런 상대가 있나요?
그리고 나 역시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나요?
말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
말 좀 하는 하루,
말이 통하는 쫄깃한 하루를 살면 참 좋겠습니다.
당신과 내가 그렇게 만들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