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오늘도 아침에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아침부터 후다닥 청소하고 본 업무에 돌입하려면 몸을 재게 놀려야 합니다.
일단 공간에 들어서면 환기부터 시킵니다.
모든 문을 활짝 열고 환풍구 팬을 돌리지요.
그리고 청소 도구가 있는 곳으로 직행합니다.
챙기는 청소 도구는 4가지입니다.
청소기, 빗자루, 쓰레받기, 먼지떨이 2종류.
먼지떨이 둘 중 하나는
바닥을 쓰는 대신 쓰는 용도입니다.
빗자루가 닿기 힘든 바닥의 구석진 곳까지
먼지떨이로는 거뜬히 청소할 수 있거든요.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요. 한번 해 보세요.)
오늘도 책장에 책들에 쌓인 먼지를 떨었습니다.
매일 열심히 떨기 때문에 별로 쌓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조금의 먼지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잽싸게 관성적으로 움직이며 떨지요.
그런데 이런.
오늘도 향수 이벤트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책장의 앞선에 맞춰 책을 배열하다 보니
책 뒤로 책장 안쪽 공간이 있거든요.
거기로 관성적으로 먼지떨이를 집어넣어 빠르게 먼지를 떨고 지나가는데
그 안쪽 공간에 책방지기 님이 향수를 넣어둔 것이었습니다.
어제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요.
그것도 모르고 하던 대로 빨리 훑다가 향수를 쓰러뜨린 거예요. 이런.
향수가 쏟아지고 당연히 책도 좀 젖었고요.
향내가 진동하기 시작했지요.
아 지난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바닥에 향수를 다 쏟고 말았지요.
쏟아진 향수를 보면서 또 생각했습니다.
이걸 도대체 왜 이 뒤에 숨겨놓은 걸까?
나는 왜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그냥 막 털어댔을까?
어쨌든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어요.
이미 쏟아진 향수.
이미 젖은 책의 표지들.
살짝 낙심하며 바라보는데 신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어요.
신 : 책을 팔지 말고 네가 읽거라. 허허.
나 : 네. 분부대로 하려고 노력할게요. 당'신'의 향기가 참 좋군요.
그러다가 심리상담사답게 또 한 가지 생각을 합니다.
내 마음 뒤편에 숨겨둔 나만의 향기는 무엇일까?
겉으로 보이는 표지 이면에 숨겨진 그 향기.
우리는 흔히 자기의 어떤 면들을 감추며 살지요.
남들에게 들킬까 봐 걱정하면서 뒤편에 숨겨둔 나의 어떤 모습.
거기에는 의외로 부정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의 뒤로
먼지도 쌓여 있었겠지만 향수도 있었던 것처럼.
그 향수가 쏟아지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향수가 끝내 쏟아져 온 책장에 향기를 퍼뜨리길 기다렸던 것처럼.
내가 은밀히 숨기고 있는 것에는
어떤 좋은 것이 함께 숨어 있어서
내 존재를 가득 채울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를 채우고 나를 넘어서
동네방네 은은히 좋은 향을 내려고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두려워서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당신이 숨겨놓은 모습에는 좋은 향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숨기고 있는 그 향기는 무엇인가요?
오늘 우리
그 향기를 조금 꺼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 안에는 그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 안에 좋은 향도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