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오늘도 심리상담센터이자 서점을 청소했습니다.
월요일은 아침 일찍부터 바쁜 일정이 있어서
책방지기에게 모든 청소를 맡기고 하루 건너뛰어서 하는 청소.
아자 해 보자!
왠지 기운이 넘칩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맑은 정신으로 거침없이 청소를 합니다.
쓱쓱 에너지 넘치게 청소기를 돌리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과격해집니다.
내 기대대로 순조롭게 청소기가 안 움직일 때
괜히 더 참을성 없이 성질을 부립니다.
인생이 내 꼴을 보더니
오늘도 에세이 쓸 거리를 주겠다는 듯
청소기질에서도 성찰할 거리를 줍니다.
나의 성마른 청소기질에 인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적당히 잘 사는 인생살이 비법이 있어요. 인생의 방망이를 짧게 잡고 휘둘러요."
청소기질을 쉽게 하려면
청소기 호스를 길게 빼면 됩니다.
청소기가 알아서 먼지를 빨아들이게
청소기를 가볍게 잡고 힘을 뺀 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 됩니다.
나와 청소기 주둥이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두면 되지요.
하지만 청소기 호스를 길게 빼면 그만큼 흡입력이 떨어집니다.
내가 잡고 있는 손잡이에서 흡입구까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세심하게 청소기를 조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정확히 내가 원하는 위치에 청소기를 들이대기가 어렵지요.
특히 구석을 청소할 때,
그것도 전선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곳,
스탠드, 기타 거치대 등 여러 소품이 있는 곳에는
정확하게 먼지를 타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장애물을 피해 먼지를 향해 청소기를 뻗을 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은근히 살짝 부아가 납니다.
슬금슬금,
화는 이런 식으로 탄생을 하지요.
청소 좀 쉽게 하려다가 더 힘만 듭니다.
쉽게 살려다가 더 어렵게 됩니다.
청소기질을 쉽게 하는 진짜 방법은
사실은 호스 길이를 줄여 짧게 잡는 것입니다.
야구에서도 살아서 어떻게든 진루하고 싶다면
방망이를 짧게 잡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볼을 더 잘 골라낼 수 있고
홈런은 못 쳐도 안타를 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짧게 잡고 안타를 계속 치는 사람 vs. 길게 잡고 어쩌다가 홈런을 한번 치는 사람.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더 길고 오래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더 타율이 높을까?
안 봐도 뻔한 셈을 인생에는 바로 적용하지 못합니다.
매일 하는 청소에도 적용하지 못하는걸요.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얼른 청소기를 짧게 잡습니다.
다도를 하듯이 정성스럽게 다가갑니다.
먼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줄입니다.
정확히 먼지를 저격합니다.
먼지가 쑥 빨려 옵니다.
아 상쾌하도다!
끝내 청소기를 짧게 잡고
오늘의 청소를 끝냈습니다.
매일 청소하는 나는
매일 홈런은 못 쳐도
매일 안타를 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인생의 타율이 조금 올라갔습니다.
이런 걸 두고 요새 유행하는 말로는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라고
하는가 봅니다.
점묘화에서 한 땀 한 땀 점을 찍듯
하루하루 오늘의 점을 찍다 보면
인생 전체는 훌륭한 걸작이 되겠지요.
당신이 길게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오늘은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요?
오늘 하루만 짧게 본다면 어떤 안타를 치고 싶나요?
당신도 나도 홈런은 못 쳐도
매일 안타를 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면서도
오늘만 짧게 잡고 실천하는 하루를 보내서
오늘밤 발 뻗고 뿌듯하게 잘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