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가 대신 청소, 여긴 내 영역이에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구정 연휴 이후에 조금 느슨해진 마음 때문인지

새벽 기상 시간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 일과가 조금씩 조금씩 밀려서

아침 청소 시간이 너무 빠듯해집니다.


오늘도 거의 6시가 되어서 기상했습니다.

라디오 방송도 해야 되는데

그전에 샤워도 해야 되는데

여러 글을 낭독하고 포스팅도 해야 되는데

이 많은 걸 다 어쩌지.


일단 남들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하니

라디오, 낭독 인증 등 하나씩 착착 진행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청소하러 가는데

벌써 평소보다 20분 넘게 지각입니다.


아침에는 상담도 해야 되고요.

어쩌지,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래. 오늘은 상담실과 계단만 청소하는 거야.


아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시간을 고무줄처럼 어떻게든 늘려서라도

반드시 청소하고 싶은 구역,

거긴 내 영역입니다.


전문 용어로 나와바리.

아무도 거기에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 영역을 청소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습니다.


동물들은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 응가를 한다고 하지요.

대소변을 뿌려서 자기 영역을 분명히 한다고 하는데

사람은 그럴 수 없잖아요.


'사람이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방법은 청소구나.'


오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곧 죽어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공간.

그래서 내가 손수 청소하는 것.

이것이 사람의 영역표시입니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거기는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응가를 싸질러 놓는 대신 깔끔하게 청소를 합니다.

나의 고운 님들이 오실 공간이니까요.

고운 님들이 산뜻한 기분으로 앉았다가

오기 전보다 더 개운하게 떠나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설령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해도 여긴 내 영역입니다.

내가 청소를 했기 때문에 내가 주인입니다.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수 있는 영역,

내가 직접 쓸고 닦은 신성한 영역.

이곳이 성소(聖所)입니다.


성전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을 모신 곳, 교회나 절만 성전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청소를 한 곳이

나의 성전이 됩니다.


오늘도 나의 신성한 공간을 빛나게 했구나.

청소를 하고 나니 마음이 흡족합니다.

나의 성전을 오늘도 사수한 나에게 찬사를!


당신의 영역은 어디인가요?

당신은 어떤 식으로 영역 표시를 하나요?

최후에도 사수하고 싶은 그 영역을 당신은 어떻게 다루나요?


청소를 하고 나니

바닥에 입 맞추고 절하고 싶은 심정이 듭니다.

왠지 이 공간이 나를 받아줬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지요.

단지 바닥이 깨끗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우주가 나를 받아준다는 느낌.


우주가 나를 받아준 이 공간.

이곳은 내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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