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밑바닥에 키스해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어제, 월요일은 서울에 일정이 있어서

새벽같이 나가는 바람에 청소를 하루 쉬었습니다.

월요일은 공식적인 청소 휴일.

모든 청소를 책방지기에게 맡기고 외출하는 홀가분함,

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합니다.

청소는 나의 것이라는 생각.

내 삶의 몫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찜찜함이

아주 약간 남습니다.


화요일인 오늘, 그 찜찜함마저 훌훌 털어버리려

더 열심히 청소를 합니다.

이상한 건 열심히 하려고만 하면

마음이 급해진다는 것입니다.

또다시 빨리 해치우려는 마음, 분노의 청소질.

아주 미세할지언정 인생 곳곳에 묻어있는,

나의 조급함과 노여움을 발견합니다.


한평생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구나!

반성을 합니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바닥에 주저앉고 싶습니다.

이 마음으로 인생을 이끌고 오다니.

삶의 무게와 정신적인 결핍에

바퀴도 안 달린 수레를 끌듯이 살아온 건 아닐까.


청소도 했겠다,

바닥을 끌어안고 싶습니다.

차마 안지 못했던 내 삶을 끌어안고 싶습니다.

바닥에 먼지 앉도록 방치했던

내 삶의 가장 낮은 곳을 끌어안고 입 맞추고 싶습니다.


삶의 고단함이 몸으로 느껴지자

저절로 주저앉게 됩니다.

요가의 고양이 자세를 하려던 것도 아닌데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이마를 땅에 대게 됩니다.

내 인생의 밑바닥에 키스하는 심정으로

어쩌다 보니 절을 하고 맙니다.


무릎으로 털썩 주저앉았다가

양손으로 철퍼덕 땅을 짚었다가

머리를 천천히 땅에 대었다가

다시 일어서기.


나도 모르게 한 절 동작.

왠지 3번은 해야 완결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인생은 삼세 판.

3번 연이어 절을 합니다.

예쁘지 않게

삶의 고단함을 담아 철퍼덕

다 내려놓으며 머리를 땅에 찧었다가

다시 일어서기.


짓눌려 있던 생각과 고갈된 정신은

그렇게 몸으로 표현됩니다.

신성한 요가를 하려던 것도 아닌데

절로 신성한 표현을 합니다.

아무 대단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의 무게를 견딘다는 것이

새삼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루를 사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백팔 배를 완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몸이 인생에 대해 알려줍니다.

"주저앉는 것은 필연, 주저앉은 다음에 일어나는 게 인생이야."


그렇군요.

108배를 하거나

경건한 의식을 치르거나

신성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루하루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주저앉았던 몸을 다시 일으키는 것.

우리는 매일 그렇게 부활합니다.

매일 밤 재가 되어 사라졌다가

매일 아침 잿더미에서 날아오르는 불사조처럼

우리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당신을 주저앉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을 오늘도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오늘 다시 깨어난 당신, 혹시 불사조는 아닌가요?


주저앉은 밑바닥에

절을 올리고 키스를 하며

다시 나 자신을 일으킵니다.


죽는 날까지 살도록 되어 있는 우리는

주저앉은 곳에서 몸을 다시 일으키며

오늘도 부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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