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삶에서 과거를 뽑아내요.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 상담 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일전에 청소기에 대해서 쓰면서

청소기 3부작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그 아이디어가 찾아왔습니다.


마지막 편인만큼 다큐멘터리처럼 제목을 뽑고 싶군요.


3부. 청소기, 인생을 말하다.

인생의 구루, 청소기에게 듣다.

모든 고민의 종결자, 청소기.


이런 제목들이 생각이 납니다.

자 제목은 그렇고 이야기 들어갑니다.


가끔 청소를 하다 보면 괜히 심통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곳저곳 청소기를 끌고 다니다 보면

너무 길게 끌고 다닌 나머지 길이가 모자라

덜컹 멈춰야 할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생각합니다.

아 왜 무선 청소기가 아닌 거야.

얘는 줄이 왜 이렇게 짧은 거야.

바보 같은 청소기!


오늘도 더 이상 앞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청소기를 보며

바보 같은 생각을 합니다.


잠시 한숨을 쉬며 멈춰서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청소기를 보니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내가 보입니다.

바보 같이 살고 있는 내가 보입니다.


길게 늘어진 코드를 보니

내가 살아온 인생길처럼 보입니다.

과거를 질질 끌고 다니는 내 인생.

과거를 엉키게 만드는 내 인생.


가끔 과거를 뜯어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불킥을 날리며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건 내 삶이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싶은 심정.

모든 결점을 깨끗이 포맷하고 싶은 마음.

실은 그럴 때야말로

내가 과거를 끌고 다닌다는 것을 깜박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납니다.


길게 내뺄 때로 내뺀 청소기 코드가 내게 묻습니다.

이제 그만 나를 플러그에서 뽑아 줄래?


내 안에서도 어떤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나가게 두지 않고서

왜 지나가지 않냐고 따지고 있니?


심호흡을 하고는

청소기 코드를 플러그에서 뽑습니다.

코드를 빼서 청소기에게 돌려줍니다.

코드를 정리해서 몸체에 넣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현재에 부착된 과거를 뽑습니다.

과거를 놓아주고 과거에게 돌려줍니다.

과거는 정말로 과거의 삶이 되게 떠나보냅니다.


청소를 마치며

내 과거도 정리된 듯 산뜻한 기분이 듭니다.


당신은 어떤 과거를 끌고 다니나요?

그 과거는 끌고 다닐 만한 가치가 있나요?

그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물들이고 있나요?


오늘도 청소기에게 한 수 배웁니다.

하루를 살며 혹시라도 과거의 덫에 걸리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청소기를 떠올리려 합니다.


코드를 빼고 자유로워진 청소기처럼

현재의 삶에서 과거를 뽑고

내 삶도 앞을 향해 시원하게 나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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