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집안 일이 있어서
간단히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딱 한 곳만 청소를 해야 한다면?
나의 가장 소중한 공간 상담실입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상담사는 상담실을 수호합니다.
시간도 많지 않으니 손이 쉽게 닿는 곳에 있는
무선 청소기를 꺼냅니다.
평소에 쓰는 낡은 유선 청소기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는 무선 청소기.
그런데도 나는 왜 이 새로운 친구와 거리가 있는가.
청소기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삶의 깊은 욕구가 보입니다.
내가 무선 청소기보다 유선 청소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단지 손에 익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유선 청소기가 플러그를 콘센트에 박고 움직이듯
내 삶이 어딘가 단단히 뿌리내리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디든 자유롭게 움직이더라도
나의 근간만큼은 온전하게 지키며 살길 바랍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아니 흔들리듯
내가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는 '우리'라는 삶의 뿌리.
비약하자면 포유류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욕망인,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가벼움입니다.
무선 청소기는 무선이라서 모든 기능을 몸체에 내장한 탓에
생각보다 몸이 무겁습니다.
오히려 유선 청소기를 놀려 보면 훨씬 가볍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무선이지만 어디든 무겁게 끌고 다녀야 하는 것과
유선이지만 어디든 가볍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의 차이.
나는 그 사이에서 유선이라도 가벼운 것을 선택합니다.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더 가벼운 것.
그래서 더 멀리 더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것.
내 삶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유선 청소기에는
나의 그런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소속되고 싶으며 동시에 자유롭고 싶은 욕망.
자율적으로 살고 싶지만 동시에 언제든 둥지에 돌아오고 싶은 욕망.
서로 모순된 욕망 같지만 이것이 나의 솔직한 욕망이며
이 욕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임을
오랜 심리상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모순도 사랑하기로 합니다.
나도 포유류의, 인류의 하나이기 때문에.
당신은 어떤 모순된 욕망을 가지고 있나요?
그 모순 속에 담긴 당신의 진실한 마음은 무엇인가요?
그 모순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인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요?
청소를 마치며
날렵해 보이지만 무거운 무선 청소기를 내려놓습니다.
다음에는 다시 유선 청소기를 잡으리라 마음먹습니다.
오늘은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의 욕망에 충실하며
'그렇고 그런' 인류의 하나로 살아가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