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안에 최대한 빠르게 글을 쓴다.
자유롭게 연상되는 대로 쓴다.
철자나 맞춤법, 논리 등은 생각하지 않는다.
낯선 단어들을 조합하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형용사와 명사를 조합하자.
이상한 문장을 만들자.
새로운 단어를 발명하자.
하나의 표현을 단어만 바꿔 가며 계속 써보자.
이름을 쓰고, 이름 뒤에 감춰진 그 사람의 기이한 면모를 적어보자.
문을 열고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곳으로 그들을 내보내라.
시간이 다 됐다.
11분 동안 얼마나 많은 단어를 썼는가?
다음에는 이보다 더 많이 써보도록 하자.
-픽사 스토리텔링, 매튜 룬
오랜만에 브런치에 다시 들어왔다.
브런치도 자기가 하향세인 것을 아는지 알림 문자를 보내왔다.
매일 꾸준히 적으세요 작가님!
나는 그동안 왜 한 글자도 적지 않았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하루 살이가 바빴던 이유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글을 쓸 만한 사랑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
대관절 사랑이 뭐길래 온 세상이 사랑 타령인가.
인류 역사가 사랑 타령이고, 문화와 예술이 사랑 타령이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하고 있으리라.
사랑이 뭔지는 말할 수 없지만
사랑이 없이는 인류가 존속할 수 없었음을
온 세상이 사랑 타령을 하고 있다는 걸 보고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랑!
나는 가끔 기도한다.
조금만 더 사랑하게 해 주세요.
태생이 이타적인 사람은 아닌지라
그럼에도 뭔가 이타적이어야 할 것 같은 상담사라는 일을 하면서
이타성을 키우고자 부지런히 노력한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이타성.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나와 남의 구별이 옅어지는 만큼
그만큼 우리는 사랑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사랑이 내게 얼마나 있는지 자문자답을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한여름 더위처럼 축 처져서 좀처럼 기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듯한
빈사 상태의 열정인, 내 안의 사랑을 보곤 한다.
조금 더 사랑하며 살 순 없을까?
글을 써 제끼며 사랑해달라고 구걸하지 말고
내 안에 주체할 수 없이 사랑이 넘쳐나서
주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하며 살 순 없을까?
아마 일평생의 과업이 될 테지.
나에게 그런 혹독한 과제를 주다니.
이건 참 사랑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사랑!
오늘 내가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고
11분 경주마 쓰기로 마구 사랑 타령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내게 여전히 그 열망이 있다는 소리다.
사랑하며 살고 싶은 열망.
동시에 사랑 받고 싶은 열망.
이 끈질길 욕망에서 자유로워지고도 싶지만
한편으로는 질펀하게 이 욕망의 바다에서 헤엄쳐 보고 싶기도 하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사해와 같은 사랑이 있으니
누구든 와서 편히 놀다 가이소,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 없으면 한 글자도 적지 않겠다.
아니 그보다 정직한 말은,
사랑이 없으니 한 글자도 적을 수 없다.
지금 이렇게 조금이라도 타이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옹달샘만한 사랑이라도 있다는 뜻이다.
만인에게 전하고 싶은,
나에게 머물며 나를 고이게 만들지 않는,
어디든 흘러가며 만물을 생장하게 하는 사랑 말이다.
아 그 옹달샘.
나도 마시고 남에게도 주고 싶다.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정말 살고 싶었던 인생,
가끔 지표를 잃은 듯 헤매지만
사람을 조력하는 이 길에 들어선 것도
다 그 옹달샘 나누자고 시작된 것이 아닌가.
사랑하며 살아보자.
사랑을 요구하지도 말고 강요하지도 말고
타인에게는 물론이요, 나에게도.
사랑하라는 말 한 마디 없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내 안에 있음을 감지한다.
너무 쉬이 잊고 살지만
동시에 언제 어디든
불편부당하여 있는 것이라 잊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 한다.
(11분 종이 울렸으니 그냥 서둘러 마무리.)